나의 애독시(462) : 낙엽(落葉) / 오세영

낙엽길1.jpg




나의 애독시(462)

 

 

낙엽(落葉) / 오세영

 

 

꽃잎 스스로 허물어져 흙이 되는

이승의 가을은 황홀하여라,

가자,

싱싱한 한 알의 능금만을 남겨두고

나의 진실, 나의 허무(虛無),

소멸(消滅)해 가는 내 영혼(靈魂)의 어두운 등불.

 

 

삶의 허무를 읊은 시에 애착이 가는 건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탓이 아닐까요. 요즘 낙엽을 밟으면 새삼 생명에 대한 공경과 자연에 대한 경탄으로 숙연해집니다요. 생명의 지혜를 배운다고나 할까요. 떨어지는 잎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 모체(母體)인 나무의 거름이 됩니다. 누군가는 낙엽이 떨어지는 일이 다만 환생의 새 출발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합니다. 태연자약하게 떨어진 낙엽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또 다른 하나의 새로움으로 거듭 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담담한 심정으로 맞이할 수는 없는 것 같다고요? 죽음의 본질을 모르기에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같은 시인의,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시도 덤으로 올립니다. 어느 시의 느낌이 맘에 더 와닿는지요?

 

 

 낙엽 / 오세영

 

이제는 더 이상

느낌표도 물음표도 없다.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

 

다함없는 진실의

아낌없이 바쳐 쓴 한 줄의 시가

드디어 마침표를 기다리듯

나무는 지금 까마득히 높은 존재의 벼랑에

서 있다.

 

최선을 다하고

고개 숙여 기다리는 자의 빈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빛과 향으로

이제는 이 채워야 할 그의 공간,

 

생애를 바쳐 피워 올린

꽃과 잎을 버리고 나무는

마침내

하늘을 향해 선다.

 

여백을 둔 채

긴 문장의 마지막 단어에 찍는

피리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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