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54)

♬ 가을 편지 /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이 <가을 편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역시 첫 연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려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쓰인 편지가 아닌 한낱 낙서에 불과할지라도 가을에 쓰는 편지는 내 마음의 정표(情表) 바로 그것이고, 거짓 없는 삶의 이력서 바로 그것이 될 겁니다. 그럼에도 그 소중하고 비밀스러운 것을 아무런 망설임이나 서성임 없이 누구에게든 보내고 싶은 마음, 그것은 가을의 서늘함이 주는 용기가 아닐는지요. 한번쯤은 맘 가는 대로 자신을 내려놔도 괜찮은 계절이 가을이 아닌가 하는데요. 이 멋진 가을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가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시에서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을 서정적이고 감성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막연한 그리움과 고독감으로 아무에게나 편지를 보내고 싶은 시인의 감수성이 쉽고 간결한 문체로 리듬감 있게 표현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동원, 신영옥, 김민기, 최양숙 등이 불러 우리는 노랫말로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