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감상 후기(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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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4. 음악 감상 후기

 

[4-9]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라는 뜻입니다. 뉴스에서 상류층 자녀들이 병역 비리 문제가 터질 때마다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단어입니다. 보통 부와 권력은 그것이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귀족의 개념이 따로 없는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 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도덕성을 요구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기근에 허덕이던 제주도민을 먹여 살린 조선시대의 거상 김만덕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이든이나 바흐, 베토벤 등과 같은 천재들의 음악을 문화유산으로 물려받아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당대 귀족들의 예술가들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큰 역할을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가들이 역사 속에서 그저 길거리 악사로 전락하지 않고 예술가로 대접받으며, 생활고에 신경 쓰지 않고,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귀족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천재들이 과연 그 훌륭한 음악을 세상에 내놓고도 남의 도움이 필요했겠느냐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얘기가 틀립니다. 지금처럼 대중 미디어가 발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곡가들의 주 수입원이 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더군다나 그들이 만든 음악을 누릴 수 있는 계층 자체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던 과거엔 귀족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오페라나 리사이틀 등의 공연 수익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대부분 우리가 기억하는 큰 이름들, 즉 모차르트, 바흐, 헨델, 슈베르트, 베토벤 쇼팽 등은 모두 시대에 앞서가는 음악가였습니다. 오늘에 와서나 그들의 음악이 클래식이지, 그 당시의 대중에게 난해한 전위음악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중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끊임없이 진보를 늦추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추구했기에 서양음악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엔 이 음악가들을 위해 먹고사는 일은 걱정하지 말고 오선지에나 집중하라.’며 격려했던 귀족의 뒷바라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위와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누가 실천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중스스로인 것 같습니다. 이제 예술 문화는 더 이상 귀족이나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귀족이 선뜻 내놓던 대규모의 후원금이 대중이 지불하는 인세나 저작권료로 대체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내게 와닿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써주는 사람이 있으면 적은 금액이나마 그를 후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또 다른 음악을, 이야기를,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예술혼에 불타는 천재라도 생활고로 고생한다면 창작을 계속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시스템엔 분명, 여러분이 미미하게나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게끔 해주는 루트가 많습니다. 어쩌면 대기업들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생색내며 떠벌이는 문화 사업이나 문화 시설 건립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합리적인 것인지, 위험한 것인지 아직 판단할 수는 없으나, 좌우간 작금의 시스템으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열쇠는 평범한 대중이 쥐고 있습니다. 문화 소비의 주체가 대중으로 옮겨 간 지금, 실상 모든 것의 책임은 우리 스스로의 손안에 있습니다.

 

TV에서 눈꼴사나운 막장 드라마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이 보기 싫다면, 가사 같지도 않은 국적 불명의 후렴구나 반복해 대는 가요, 그 노래가 동요보다도 유치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다 누구의 책임이던가요? 자본주의 구조에서 소비가 없으면 생산은 자멸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새 리패키지 음반에 신곡이 달랑 하나인 게 짜증 난다면 인제 그만 우리, 모두가 제 돈 내고, 내려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문화의 하향 평준화가 걱정된다면 여러분이 먼저 고급이 되어야만 합니다. 귀족들의 후원을 받은 작곡가들이 명작을 남긴 데에는 귀족들이 고상한 걸 원했다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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