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47)

♬ 가로등이 있는 숲길 / 양애경

 초여름 저녁 어스름

산책로로 접어드는데

파득, 하고

가로등이 날개 펴는 소리가 들렸어요

올려다보니

빛의 씨앗이 점점 더 붉게

더 환하게 켜지더니

밤의 우주를 향해 열린 커다란 등대가 되더군요

내 마음도 가로등처럼 켜져서

우주를 향해

그대, 나 외로워!

라고

나와 밤하늘만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외쳤어요

빛의 빠르기로 대답이 와도

몇천 년 후에야 이 자리에 도착할지 몰라요

산새가 가쁜 내 숨소리를 따라와서

자기도 답.답.해. 답.답.하다고

나무 위에서 큰 소리로 울어줬어요

하늘엔 초승달과 별이 마주보며

저렇게 수줍게 열려 있는데

밤이 다가온 숲과

사람이 사는 마을 사이

저렇게 아름다운 불빛들이 걸렸는데…

◑ 여름 저녁 어스름 녘에 혼자 걷는 산책길에 가로등이 날개 펴는 소리를 하며 불을 밝혀줍니다. 우주를 향해 등댓불처럼 환하게 퍼져나가는 불빛처럼 내 마음도 그대를 향해 그렇게 켜지기를 바라는 것인가요. 내가 외로워 소리쳐도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그대의 목소리. 사람의 마을에는 아름다운 불빛들이 걸렸는데, 산새만 대신 울어줄 뿐 그대가 없는 적적한 길이 뻗어 있습니다. 그런 외로운 산책길을 오늘도 혼자 걷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을 겁니다. 나 혼자만 외롭다고 생각하며 걸었던 젊은 시절의 어떤 그 산책로가, 혹은 젊은 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자주 걸었던 그 산책로가 혹시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지요? 오늘은 머릿속으로 그 산책로를 따라 한번 쭉 걸어가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