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46)

♬ 가을맞이 / 김희경

끝내 저질렀어

다소곳이 기다리는 게 여자의 도리라지만

참으려 해도

몸이 달아올라 견딜 수 없는 걸

어찌합니까

밤이면 도지던 열병이

거리를 무작정 헤매이게 하더니

만날 것 같은 예감 하나로

경회루 앞에 와서 섰는데

글쎄 말입니다

금족령을 어기고 나온

네 죄가 크다며

연못 앞엔 경고문만

전하처럼 버티고 있더이다

위험, 들어가지 마시오

◑ 맨 처음에 ‘끝내 저질렀어’ 하니까 결국 사고를 쳐버렸구나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퍼뜩 들지 모르겠으나, 항상 ‘…하지 마시오’란 상황 속에서 익숙하게 살아온 우리에겐 엄청난 일탈이 벌어졌다고 단정한다는 건 이르지요. 금지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가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무척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위험,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경고판이 도처에 널려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이미 체질적으로, 또 자동적으로 자제력 연습을 충분히 해온 것이 아닌가요. 만약에 이제라도 뭔가를 저질러 보려고, 마음속에 있는 ‘위험’이란 팻말을 치워버리고 도전(?)적인 행동으로 나선다면 그건 늙은이의 주접에 해당하는 겨, 아니면 가문의 영광인 겨, 그렇지 않으면 가문의 위기인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