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4. 음악 감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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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평가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판단의 기준이 작품을 보고 개인적으로 느낀 ‘나만의 인상’이기 때문입니다. 인상은 주관적이며,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고유한 감성의 영역입니다. 사막을 찍은 사진을 보고 어떤 사람은 사막의 황량함을 떠올리며 그냥 지나치지만, 어떤 사람은 노란색이 주는 강렬한 느낌에 빠져 두고두고 봅니다. 그 차이는 감정 이입을 어느 정도 하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 대체로 예술을 더 잘 즐깁니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은 감정 이입을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배우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배우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느끼면서 보는 사람들은 하나를 봐도 열을 끄집어내 즐길 수 있습니다. 감정 이입을 잘못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만나도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예술 작품과 감상자의 관계를 간단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술 작품은 크게 재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감상자는 재미를 잘 느끼는 사람과 못 느끼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조합은 재미있는 작품을 재미를 잘 느끼는 사람이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환상의 조합입니다. 재미없는 작품과 재미까지 못 느끼는 사람의 조합은 시작에서 즉시 퇴출당합니다. 재미를 잘 느끼는 사람과 재미없는 작품의 조합은 그렇게 최악은 아닙니다. 열성적인 사람은 재미없는 작품도 재미있게 보고, 정말로 재미가 없는 작품에서는 교훈이라도 찾아냅니다. 최악의 조합은 재미있는 작품을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 보는 것입니다. 답이 안 나오는 조합입니다.

감정 이입은 잘되는 것이 선천적인 능력이라면, 감탄을 잘하는 것은 어느 정도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웃긴 것이듯, 감탄도 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감탄할 줄 아는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극장에 들어가거나, 전시장에 들어가는 행위는 암묵적으로 작품의 배경에 나도 젖어 들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예술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은 결국 감정 이입과 감탄, 이 두 가지 활동이 두뇌 속에 날줄과 씨줄처럼 잘 엮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이런 말이 있다고 하지요. 작(곡)가는 “자기 작품을 해설하는 일은 금기다. 자기 입으로 작품을 해설하면 작품은 제 스스로 말할 기회를 잃는다.” 작(곡)가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독자나 관객이 독특한 독법(讀法)으로 작품을 해석할 때 큰 기쁨을 누립니다. 작가와 관객은 작품을 사이에 놓고 밀고 당기는 해석은 작품을 계속 찾게 만드는 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예술의 역사는 ‘무엇을 표현했느냐’에서 ‘누가 표현했느냐’로의 이동입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성모상이나 피에타상을 누가 그렸고 만들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자에 불과했던 예술가들은 귀족이나 교회에서 돈을 받고 열심히 잘 만들거나 그리면 그만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이 예술가로서 존재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자본주의와 시민사회를 특징짓는 근대에 와서 예술가의 기술은 존중되고 지위도 격상되었습니다. 더욱이 20세기 이후에 생산되는 현대 예술 작품은, 작가의 내면 상태를 나타내는 추상 작품이 늘어나면서 도대체 이 작품이 뭘 말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철학, 미학,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도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예술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학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감각적 경험을 이성적 사유로 바꾸면 되는데, 머리를 식히려고 보는 예술인데 머리가 더욱더 복잡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인간에겐 알고 싶은 욕구,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서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떠나 작품 속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관객은 온갖 이론으로 무장한 평론가의 글에 수동적으로 해석에 의지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술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뱉어놓은 말들은 우리의 감성에 해를 끼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