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44) : 들길 / 이형기

길30.jpg



나의 애독시(444)

 

 

들길 / 이형기

  

고향은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 하여 좋다.

지닌 것 없이

혼자 걸어가는

들길의 의미.

 

백지에다 한 가닥

선을 그어 보아라.

백지에 가득 차는

선의 의미

 

아 내가 모르는 것을,

내가 모르는 그 절망을

비로소 무엇인가 깨닫는 심정이

왜 이처럼 가볍고 서글픈가.

 

편히 쉰다는 것

누워서 높이 울어 흡족한

꽃그늘

그 무한한 안정에 싸여

들길을 간다.

 

  

고향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공간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고향은 어머니와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그것에 어머니가 꼭 살아계셔서만이 아니라 고향이 갖는 이러한 의미가 어머니와 같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삶에 지쳤을 때,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 외로울 때 고향을 생각하게 됩니다. 고향에 돌아가서 그 사랑과 안식의 땅에 몸을 누이면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충전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심신이 고달픈 이들이여! 절망감이 찾아들면 고향으로 돌아가 들길을 걸으시오. 혼자 걸어가는 들길은 그 절망을 이겨내는 힘을 주고 분명 당신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분위기와 안정감을 베풀어 줄 것입니다요. 그래서 가볍게 되어 돌아오시오.

 

이 시에는 들길을 걸어가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그러나 시를 읽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가 삶에 지쳐 귀향길에 오른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 고향이란 그 누구에게나 안식과 평화를 베풀어 주는 따뜻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됩니다. 따라서 시의 제목인 '들길'은 바로 고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삶에 실패하여 빈손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화자의 궁핍한 심정이 암시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화자의 가난한 귀향에 관한 것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성찰함으로써 얻게 된 정신의 충만함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는 가난했으므로 참다운 고향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세속적인 만족과 쾌락이란 덧없고 허망하다는 것, 참된 삶이란 욕망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비우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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