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43)

♬ 밤길 / 박남수

개구리 울음만 들리던 마을에

굵은 빗방울 성큼성큼 내리는 밤

머얼리 산턱에 등불 두 셋 외롭구나.

이윽고 홀딱 지나간 번갯불에

능수버들이 선 개천가를 달리는 사나이가 어렸다.

논둑이라도 끊어져 달려가는 길이나 아닐까.

번갯불이 스러지자

마을은 비 내리는 속에 개구리 울음만 들었다.

◑ 시인은 특유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일제 식민지 시대의 농촌을 소재로 현실 상황을 암시하는 시를 발표하였죠. 이 시도 그런 시 중의 하나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평범한 듯하지만, 묘한 여운을 남기면서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요. 이 시는 단순히 여름밤의 정황만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외딴 농촌 마을의 여름밤인데, 비 내리고 갑자기 번갯불이 비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개울가를 달려가는 한 사나이가 고요하던 어둠 속의 사물들에 갑자기 활기를 불어놓지요. 어떤 긴박감이 감돌지요. 번갯불이 꺼지자 마을은 다시 어둠속에 묻히지만, 이젠 그 마을은 처음의 고요했던 모습이 사라진 듯합니다. 어둠에 가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떤 일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고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리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죠. 작품에 깔려 있는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면 틀린 생각은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