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42)

♬ 초가을 1 / 김용택

가을인갑다

외롭고, 그리고

마음이 산과 세상의 깊이에 가 닿길 바란다

바람이 지나는갑다

운동장가 포플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어제와 다르다

우리들이 사는 동안

세월이 흘렀던 게지

삶이

초가을 풀잎처럼 투명해라.

♬ 초가을 2 / 김용택

산 아래

동네가 참 좋습니다

벼 익은 논에 해 지는 모습도 그렇고

강가에 풀색도 참 곱습니다

나는 지금 해가 지는 초가을

소슬바람 부는 산 아래 서 있답니다

산 아래에서 산 보며

두 손 편하게 내려놓으니

맘이 이리 소슬하네요

초가을에는 지는 햇살들이 발광하는 서쪽이

좋습니다

◑ 얼른 더위가 갔으면 했던 지난 여름, 그런데 어느새 성큼 뒤로 물러났습니다. 여름이 가버리자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은 가슴속까지 파고듭니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이 선득하여 창문을 여닫게 되는군요. 정말 바람에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성큼 높아진 하늘, 한풀 꺾인 햇살이 어제와 다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가을바람을 쐬며 문득 ‘나’를 돌아봅니다. 잊었던 ‘존재’를 생각하게 되는군요. 며칠 전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가로수로 서있는 은행나무를 쳐다봤습니다. 은행 열매가 다닥다닥 많이도 붙어 있더군요. 잎들은 곧 푸름을 버리고 노랗게 물들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 시절도 잠깐인 듯해요. 잠깐만 견디고 나면 언제 그랬냐며 변하는 걸 왜 그렇게 못 참겠다고 투정을 부렸는지. 가을도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날 겁니다. 바쁜 손을 멈추고 잠깐이라도 ‘초가을 풀잎처럼 투명’한 삶을 느껴 보고 싶습니다. 서늘하고 신선한 바람기가 정신을 맑게 합니다. 한동안 더워서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라고 알맞은 기온의 날씨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