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41) : 하늘색나무대문집 /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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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441)

 

하늘색나무대문집 / 권대웅

 

 

십일월의 집에 살았습니다

종점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얼키설키 모인 집들과 몇 개의 텃밭을 지나

막다른 골목 계단 맨 끝 문간방

그 집에서 오랫동안 가을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창문 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팔꽃, 해바라기

저녁의 적막을 어루만져 주던 가문비나무

가끔 아주까리 넓은 잎사귀가 슬픔을 가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담장 너머 이어지던 지붕과 지붕들

그 위로 햇빛이 만들어놓던 빛나던 개울들

황금여울을 따라 저녁의 끝까지 갔다 왔습니다

돌아오면 처마 밑 어둠이 뚝뚝 떨어지고

어디선가 쌀 일구는 소리 너무 커 적막해라

눈을 감고 술렁이는 내 마음속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불을 켜기 힘든 저녁

하늘색나무대문을 열고 나가

해바라기가 서 있던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나팔꽃 까만 눈동자처럼 한 시절 야물딱지게 맺히고 싶었습니다.

 

 

학창 시절 십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이사해 살았던 한 집 한 집을 이제 떠올려보면 희망을 낳기보다는 그 집들은 저를 좌절의 고통 속에 가두었던 괴로운 방과 집이었습니다. ()대문 집에도 살았고, 을씨년스러운 마당을 지닌 집에도 살았고, 짝사랑하던 소녀의 집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집에도 살았었습니다. 내다보면 연달은 지붕들밖엔 안 보이는 비탈진 좁은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집에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나팔꽃 까만 눈동자처럼 야물딱지게 맺히기를 왜 감히 꿈꾸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자괴감에 빠져 버둥거렸습니다.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세월들입니다. 그때의 그 아픔의 상처가 마음 한구석에 남아 고개를 내미는 것 같은 순간에는 지금도 진저리가 쳐집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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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꿈도 안 꾸고 야물딱지게 맺힘이 더 좋은거 아닌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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