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 Symphony No. 5 Op. 64 (356)
- 서건석
- 2025.05.15 06:08
-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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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356)
356
♣ Tchaikovsky / Symphony No. 5 Op. 64
♬ 차이코프스키의 4, 5, 6번 세 곡의 교향곡은 한국인에게 매우 사랑받는 레퍼토리입니다. 특히 이 세 곡의 교향곡은 겨울의 정서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들어야 제맛이 나는 특유의 우울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 음악의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건 역시 러시아적 정서입니다. 그의 음악에서 바탕을 이루는 정서는 역시 ‘러시아의 노래’입니다. 그의 교향곡들은 베토벤처럼 구조를 쌓아 올리기보다는 모차르트처럼 선율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입으로 따라 부르기 좋은 선율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그 선율들은 매우 러시아적이어서,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슴으로 쉽게 밀려오는 본능적인 선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내 음악은 러시아의 노래에서 나왔다.’라는 차이콥스키의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가 쓴 교향곡은 번호가 붙은 것이 모두 여섯 곡, 번호 없이 표제로 출판한 곡이 한 곡(만프레드 교향곡)입니다. 그중에서도 5번 교향곡은 4번을 작곡하고 11년이나 세월이 흐른 뒤에 작곡했습니다.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객관적 사실로는 차이코프스키가 그 중간의 기간에 오페라 작곡에 많은 신경을 썼고 유럽 각지를 다니면서 여러 음악가와 친교를 나눴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동분서주하느라고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좀 떨어집니다. 그보다는 교향곡 작곡에 대한 자신 없음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잘 짜인 구성, 미묘한 관현악법을 적절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교향악의 작곡 수법에 그는 매우 중압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독일-오스트리아의 고전주의 혹은 낭만주의적 수법에 대한 열등감이었을 겁니다. 교향곡 작곡의 대세이자 표준은 바로 그 지역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차이콥스키의 예술적 유전자였던 러시아적 감성, 자신의 음악이 ‘러시아의 노래에서 나왔다.’는 고백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었던 동시에 콤플렉스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 러시아 음악계는 국민 음악파와 서구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중 서구파에 속했지요. 독일, 오스트리아 고전주의 음악에 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음악의 기초를 다진 그는 서구풍의 풍부한 화성과 구성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적 우울, 비장과 애수로 요약되는 자신만의 개성을 펼쳤습니다. 그의 음악 언어는 세계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는 러시아 음악의 세계화에 공헌한 작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교향곡 4번>을 잠깐 생각해봅시다. 4번의 1악장은 호른과 파곳이 연주하는 격렬한 팡파르로 시작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그것을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이며 정수’라면서 ‘운명’이라는 말로 폰 메크 부인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의 ‘운명론’은 11년 뒤에 쓴 <교향곡 5번>에서 한층 짙어집니다. 이번에는 아예 장송 행진곡풍의 어둡고 무거운 운명을 첫머리에 등장시킵니다. 1악장 서주에서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음울한 선율이 그것입니다. 게다가 그 운명은 불가항력적으로 인생 전반을 지배합니다. 서주의 음울한 선율은 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악상으로 계속해서 얼굴을 비춥니다.
2악장은 안단테 칸타빌레로 시작하는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이끄는 도입부에 이어 호른이 노래하는 인상적인 선율이 등장합니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애상감이 가득한 선율입니다. 여기에 다른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선율이 점점 강력해지다가 다시 고즈넉해집니다. 이어서 클라리넷이 등장해 중간부의 선율을 이끌다가 드디어 운명의 악상이 강렬한 음향을 뿜어내며 작열합니다. 1악장의 첫머리에서 만났던 바로 그 암울한 선율입니다. 그렇게 폭발했다가 다시 원래의 고즈넉함으로 회귀합니다. 마지막 코다는 잦아들 듯이 끝납니다.
반면에 3악장은 따뜻합니다. 왈츠 악장입니다. 차이콥스키가 즐겨 작곡했던, 발레 음악이 연상되는 몽환적인 느낌의 왈츠입니다. 물론 3악장에 느닷없이 왈츠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초연 당시에도 이런저런 비판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아주 적절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 2악장이 춥고 암울했던 까닭에 3악장에서라도 뭔가 따뜻한 것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 성냥팔이 소녀가 그리워했을 따뜻한 불빛이 느껴지는 악장이라고 말입니다.
이어서 1악장 서주의 주제 선율이 다시 등장하면서 마지막 4악장이 문을 엽니다. 애초에는 단조였던 선율이 장조로 모습을 바꿔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현악기들이, 이어서 관악기들이 웅장한 느낌의 연주를 들려줍니다. 으르렁대는 팀파니의 음향을 배경에 깐 채 광포한 분위기의 첫 번째 주제가 연주되고, 잘게 부서지는 음형들로 표현되는 두 번째 주제를 목관이 연주합니다. 무거운 제1 주제에 비해 두 번째 주제는 환한 분위기를 구사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 1악장 서주에서부터 이 교향곡을 관통해 온 음울한 주제 선율이 당당하게 모습을 바꿔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늠름한 행진곡풍입니다. 그래서 4악장에 내려진 일반적인 해석은 ‘운명을 극복한 승리의 행진’이라는 식입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을 사모하는 제자와 결혼했으나 행복하지 못했고, 결혼 2주째에 신경쇠약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은 불과 2개월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 후 그는 작품 지휘를 위해 유럽 지역을 두루 여행한 후 귀국하여 클린이라는 도시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쳐 있었으며, 악상의 고갈을 느끼고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작곡을 못 하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 곡에 착수한 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를 언제나 격려해주고 후원해 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폰 메크 부인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36세이던 1876년부터 교제한 그녀는 차이콥스키보다 9세 연상이었으며, 열한 명의 자녀를 둔 부유한 철도 경영자의 미망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더없이 사랑했고, 그를 후원해 그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의 교제는 14년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무려 1,200통에 달하는 서신을 교환했습니다. 하지만 폰 메크 부인의 후원 조건은 그를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는 그녀로부터 후원받으며 명작들을 쏟아냈습니다. 교향곡 <제4번>, <제5번>, <제6번>은 그녀의 후원 아래 만들어진 러시아 교향곡의 걸작들입니다.
1888년 봄부터 시작하여 그해 8월에 완성된 작품으로 전 4악장이 제1악장의 첫머리에 나오는 동기로 통일감을 자아내는 곡입니다. 제4번 교향곡을 완성한 지 11년 만에 작곡한 이 곡은 1888년 11월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청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은 혹평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듬해 1월과 3월에 각각 모스크바와 함부르크에서 연주되어 호평받았습니다. 북유럽 특유의 애수가 짙게 깔린 아름다운 민속 선율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감동으로 몰고 갑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4번과 같은 운명입니다. 이 곡에 나타난 것은 고뇌와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4번>과 <제6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나 싱싱한 그리움이나, 꿈과 달리 부드럽게 위로해 주는 정서가 느껴지기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어떤 평자는 운명을 마주한 자의 시련이 아닌 운명과 화해한 자의 달관을 그렸다고 합니다. 혹자는 메크 부인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애증과 미련과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곡이라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개성과 음악성이 잘 드러난 걸작이며 가장 변화가 많고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그의 특성인 선율의 어두운 아름다움과 구성의 교묘함, 그리고 관현악의 현란한 표현 등이 이 곡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합니다. <교향곡 4번>에 이른 ‘운명’을 주제로 한 순환 형식의 작품이며, 이례적으로 3악장에 왈츠를 사용했습니다. 이 곡의 느낌은 일견 슬픈 것 같지만, 그보다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명곡입니다.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뛰어나며 어두운 색채가 주는 질감은 부드럽습니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선사해 주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세련되기가 그지없습니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이 슬픔을 그릴 때 그것에 대한 극복과 관조에 주력했다면, 차이코프스키는 오로지 통곡만 하는 느낌이 강렬합니다. 이처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만큼 인간의 슬픔을 그토록 처절하게 울면서 그린 작품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Andres Orozco-Estrada(cond)
WDR Symphony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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