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322) :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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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322)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 / 안도현

 

 

어제도 나는 강가에 나가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오시려나, 하고요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는 말은 가슴으로 눌러두고

당신 계시는 쪽 하늘 바라보며 혼자 울었습니다

강물도 제 울음소리를 들키지 않고

강가에 물자국만 남겨놓고 흘러갔습니다

당신하고 떨어져 사는 동안

강둑에 철마다 꽃이 피었다가 져도

나는 이별 때문에 서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꽃 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도란도란 열매가 맺히는 것을

해마다 나는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이별은 풀잎 끝에 앉았다가 가는 물잠자리의 날개처럼 가벼운 것임을

당신을 기다리며 알았습니다

물에 비친 산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던

그 뻐꾸기 소리가 당신이었던가요

내 발끝을 마구 간질이던 그 잔물결들이 당신이었던가요

온종일 햇볕을 끌어안고 뒹굴다가

몸이 따끈따끈해진 그 많은 조약돌들이

아아, 바로 당신이었던가요

당신을 사랑했으나

나는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오늘은 강가에 나가 쌀을 씻으며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 밥 한 그릇 맛있게 자시는 거 보려고요

숟가락 위에 자반고등어 한 점 올려 드리려고요

거 참 잘 먹었네, 그 말씀 한 마디 들으려고요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

 

사랑이란 원래 애절한 그리움이자 기다림이지요. 기다림의 미학이 너무 진해서 괜스레 코허리가 시큰해지는군요. 속전속결의 감정 처리를 하는 현대판 사랑보다는 꾸준한 기다림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고전적인 사랑이 가슴에 사무치는 절실함을 줍니다요.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에 당신은 뻐꾸기 소리가 되다가, 발끝을 간질이는 잔물결이 되기도 하고, 따끈해진 조약돌로 변하는 느낌이 기가 막히게 좋군요. 밥 뜬 숟가락 위에 내가 좋아하는 자반고등어 한 점 올려 드리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에 이르면 그리운 당신이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하지만 이별이란 것이 물잠자리의 날개처럼 가벼운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 이 모든 사랑이 한낱 흩어지는 꿈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괜히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지요. 그러니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헤어진 임을 그리워하며 만남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내용의 연시입니다. 연애편지에 써먹으면 딱 좋을 애절함이 넝쿨째 주렁주렁 이어졌네요. 안도현 시인이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런 시 때문일 겁니다. 시는 처음 읽을 때의 느낌 그대로 음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교과서에서처럼 너무 숨은 뜻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어요. 은유와 상징에 갇혀버리면 서정적 자아의 혼란만 가져와 시 감상에 방해만 될 뿐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시에 나타난 여러 갈래의 서정적 자아를 살펴 읽는 것이 바람직할 때가 있습니다. 투철한 민족의식과 뚜렷한 역사 인식을 견지해 온 시인임을 감안하면 이 시는 의미를 확장하여 얼마든지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먼저 남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는 상황을 상정하면서 그 축원으로 쓴 시라 해도 수긍이 가고, ‘당신을 북녘 동포나 통일이라 이해해도 무방하겠습니다. 물론 쉽게 가을이라 대체해도 통하고 간절히 바라는 어떤 성취라 해도 어색하지 않겠지요. 죽도록 사랑하는 내 마음 아실 이그대를 이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에서 만나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은 열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운명의 분탕질로 비록 헤어져 있긴 하지만 흩어진 가족의 상봉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의 통일만큼 설레고 간절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한반도에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만남이 또 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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