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310)

♬ 봄밤 / 허영자

꽃피는 봄밤에는

마음도 열리거라

옛날에 앓던 병

새로 또 아려오고

옛날에 기쁘던 일

새로 눈물겨웁구나

임의 말씀 들리는

꽃피는 봄밤

목숨이 목숨이

이토록 향그른 밤.

◑ 꽃피는 봄밤에 마음 열리면 참 희한한 일이 생기나 봅니다. 새로 아려오는 옛날의 그 병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마음의 병이기를, 떠올리면 눈물 나는 옛날의 기쁘던 일은 마냥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기를, 그리고 꽃피는 봄밤에 들리는 임의 말씀은 당신의 가슴속에 향기를 심어주기를 이 봄밤에 저도 빌겠습니다. 이렇게 괜찮은 일들이 생기는 향기로운 봄밤이라면 그 속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좋은 일들이 주는 행복함을 계속 누리고 싶네요. 허나 금세 지나가고 말 봄밤이니 모든 게 그저 순간일 뿐이지요. 화사한 봄날의 환한 기운이 늘 당신 곁에 있어 향기롭게 머무르기를 빕니다. (펌)

◐ 이 시에서 시적 자아는 봄을 생명의 탄생이라는 원형 상징의 의미로 수용합니다. 특히 그것은 해체의 계절인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생명을 피어나게 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밤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캄캄하고 신비하며, 막막하고 고요한 밤은 흔히 그 어둠으로 인하여 고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잠과 더불어 평화와 안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봄밤은 꽃이 피는 밤입니다. 마음이 꽃처럼 열립니다. 그 열린 마음속에서 ‘옛날의 병’과 ‘옛날의 기쁨’이 융해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향그런’ 시적 자아가 됩니다. 이러한 내적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임의 말씀 들리는 / 꽃 피는 봄밤’이기 때문이지요.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