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봄비(309) : 아내의 봄비 / 김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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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309)

 

 

아내의 봄비 / 김해화

 

 

순천 아랫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갔는데

난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 원 조갯살 오천 원

도사리 배추 천 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서 가다 돌아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해 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다음은 어느 독자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돌아가신 지 10년도 넘은 어머님은 오랜 세월 시장에서 좌판을 하셨습니다. 요즘도 시장엘 가면 늘 나이 많고 장사에 서툰 할머니들에게서 물건을 삽니다.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추억을 사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비가 살짝 내린 어느 봄날이겠지요. 인정 풋풋한 아내와 좌판을 벌였던 어머니 같은 할머니가 빚어내는 그림은 봄비 맞은 봄꽃 같은 그림입니다. 할머니에게 봄비 값까지 치르는 아내의 따스한 마음씨에 혹시 코끝이 시큰해지지 않는지요? 아내를 바라보고 서 있는 허리가 꾸부정한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꽃 피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정말로 마음에 봄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재래시장 입구나 구석진 곳을 보면 종종 몇 가지 채소를 들고 나와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지요. 당연히 구청이나 시장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텃밭에서 키운 것으로 보이는 얼마 안 되는 상품들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손주들 용돈이나 보태려고…… 사연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파장 무렵 이들을 만나면 괜스레 몽땅 다 사주고픈 마음이 일 때가 있습니다. 깔아 놓은 채소들 다 합쳐 봐야 몇 푼 되지 않을 성싶다거나 거기에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입니다. 시인의 아내도 그랬던 모양이지요. 아니 그러기 전에 알뜰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순천 웃장 파장 무렵싼거리 하러가지 않았겠는가요. 재래시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형마트에서도 마감 시간이 임박하면 식품의 경우 싸게 팔아치웁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같은 물건이라도 헐값에 사려는 시인 아내의 살림 솜씨가 참 알뜰하지 않은가요. 시인도 우산을 들고 따라나섰습니다. 당연히 짐꾼으로서이겠지요. 파장 바닥을 한 바퀴 돌며 찬거리들을 헐값에 많이도 샀습니다. 그렇게 꾸려진 짐을 들고 시인은 먼저 나서는데 뒤따라오던 아내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앞에 서서 손짓해 남편을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 이천 원에 떨이해 가시오란 할머니의 말에 아내는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라고 하고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 원 꼭꼭 쥐어줍니다. 떨이 값이 이천 원이라 했는데, 싼거리 하러 나온 아내는 오히려 천 원을 더 보태어 줍니다. ‘봄비 값이 더해진 겁니다. 할머니도 아내의 그 마음을 알았으리라. 그러니 횡단보도를 건너올 때까지 꾸부정한 허리로 /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겁니다. 아내의 마음씨 그 마음씨에 답하는 할머니가 아닌가요. 여기서 시인은 한발 더 나아갑니다. 시인의 눈에 그 광경은 바로 꽃입니다. ‘꽃 피겠습니다따로 독립된 마지막 한 행에서 우리는 시인의 마음까지 읽습니다. 분명 시인의 눈에는 아내의 마음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이 꽃으로 보입니다. 두 마음을 꽃으로 보는 시인의 마음 - 더 아름다운 꽃이 아니겠는지요. 이만하면 살맛 나는 세상이 아니겠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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