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49) :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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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249)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기억의 한계가 없다면, 삶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마음속에 저장하게 될 겁니다. 그리 되면 전혀 원치 않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 결코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을 보호하고자 기억의 한계선을 만들었을 겁니다. 생리학적으로 점차 기억의 감퇴가 시작됨에 따라, 우리 머릿속에 넣어둔 기억물들이 하나씩 둘씩 지워지고 비워지고 사라지도록 설정이 되어 있나 봅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지요?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이것 또한 실로 자연의 절묘한 법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요. 허튼소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분이 언짢으면 말씀해 보시지요?


 

시인이 그리는 풍경을 바라보면 가슴이 아립니다. 산다는 게 뭘까요? 부부의 연은 또 무엇일까요?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랍니다.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요.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서로 부부인 줄 아는 동안만이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더 주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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