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h / Scottish Fantasy Op. 46 (272)
- 서건석
- 2025.02.20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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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272)
272
♣ Bruch / Scottish Fantasy Op. 46
♬ 1838년 쾰른에서 태어나 1920년 베를린에서 타계한 막스 브루흐는 살아생전에는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명성을 누렸던 인물입니다. 독일과 영국을 오가며 지휘자로 맹활약했고, 베를린 음대의 저명한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습니다. 작곡가로서는 무엇보다 ‘합창음악의 대가’로 각광받았는데 특히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와 같은 오라토리오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또 스물다섯 살 때 발표한 출세작 <로렐라이>, <헤르미오네>로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 분야에도 족적을 남겼으며 교향곡도 세 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브루흐의 이름은 ‘협주곡 작곡가’로 기억됩니다.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그에게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평생 동안 이 매력적인 작품을 능가하는(적어도 필적하는) 협주곡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심초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가 남긴 다양한 협주곡 작품 중에서 다음 두 곡은 명예의 전당에 추가될 만합니다. 하나는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콜 니드라이>이고, 다른 하나는 어쩌면 바이올린 협주곡 1번보다 한층 더 풍부한 선율과 리듬, 다채로운 상상력을 머금고 있는 <스코틀랜드 환상곡>입니다.
브루흐가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작곡한 것은 1879년에서 1880년에 걸친 겨울 동안 베를린에서였습니다. 당시 그는 곧 영국 리버풀의 필하모니 협회의 음악감독(1880~83)으로 부임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브루흐는 이 곡을 영국,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의 민요에서 유래한 영감과 상상력으로 채웠습니다. 다만 보다 직접적인 작곡 동기는 그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월터 스코트(Walter Scott)의 작품에서 감동을 받은 데 있다고 전해집니다.
사실 민요는 브루흐에게 있어서 창작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영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민요들을 꾸준하고 면밀히 연구했고 그 성과를 자신의 음악에 반영했습니다. ‘선율’이야말로 음악에서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었던 그는 특히 민요 선율의 소박한 단순성에 주목했습니다. 브루흐는 하나의 좋은 민요 선율이 200개의 다른 음악 선율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단언했고, 민요가 지닌 내면성, 잠재력, 독창성,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브루흐의 신념과 주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린 독주와 하프가 포함된 2관 편성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위한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민요 선율에 기초한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악보상으로는 네 개의 악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실제로는 3악장 구성처럼 들리는데, 그것은 중간의 스케르초 악장과 느린 악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첫 악장 앞에는 느린 서주가 놓여 있으며, 첫 악장이 통상적인 빠른 템포가 아니라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것도 특이한 점이라 하겠습니다.
브루흐는 이 곡을 쓰면서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처럼 독일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요아힘과 이 곡을 협연했을 때는 요아힘이 작품을 망쳤다며 불평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는 이 곡을 스페인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블로 사라사테를 위해 썼고 헌정하였으며 1880년 9월 함부르크에서의 초연도 가졌습니다. 이 곡의 바이올린 독주부가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에 비해 한층 더 적극적인 기교를 과시하는 배경에는 바로 사라사테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환상곡의 주된 주제는 ‘그리움’입니다. 브루흐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의 제2악장에서도, 〈콜 니드라이〉에서도 그리움을 노래했습니다. 쾰른 근교 숲속이 고향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익숙한 라인강이 흐르는 그곳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대 중반 이후 고향을 떠나 독일 각지를 돌며 지휘자 생활을 했고, 베를린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음악 속에서 그토록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한 이면에는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곡을 쓸 무렵에는 독일을 떠나 영국에서의 체류가 예정되었던 때였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나는 작품에 대한 구상과 생각을 대부분 자연에서 얻는단다. 유감스럽게도 삶의 많은 시간을 대도시에서 보내야만 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너희를 위해 강단에 서야 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삶에 봄이 찾아오고 그 푸름이 만발할 때, 내 안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소리가 들려온단다. 그때 나는 사랑하는 고향에서 즐겁게 지냈던 숲을 방랑하지. 그러면 내 안은 온갖 그리움의 멜로디들로 가득 채워진단다.”
서주 Grave(장중하게). 무겁게 탄식하는 듯 하프와 함께 관현악의 울림이 쓸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작됩니다. 그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랩소디 풍의 선율을 얹어 놓는데, 때로는 지그시 누르는 듯 흐르고 때로는 격하게 솟구쳐 몸부림치는 그 선율은 우수와 비애감으로 가득합니다. 말미의 페르마타에 이어 쉼 없이 1악장으로 이행한다.
제1악장 Adagio Cantabile(매우 느리게 노래하듯이). 관현악의 섬세한 울림이 다분히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하프의 아름다운 탄주가 두드러지며 환상적인 아우라가 피어오릅니다. 그 속에서 바이올린이 스코틀랜드 민요 ‘늙은 롭 모리스(Auld Rob Morris)’ 선율을 그윽하게 노래합니다. 풍부한 표정과 따뜻한 정감으로 가득한 그 흐름은 듣는 이의 가슴에 애잔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제2악장 Allegro(빠르게). 목관의 울림이 스코틀랜드 백파이프를 연상시키면서 당당하게 시작되고 무곡풍의 리듬이 나타납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유쾌한 선율 역시 스코틀랜드 민요인 ‘먼지투성이 방앗간 주인(Hey, the dusty miller)’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화려하고 다채로운 기교를 구사하는 변주가 이어지다가 점차 느려지며 첫 악장을 회상하면서 단락 없이 다음 악장으로 넘어갑니다.
제3악장 Andante sostenuto(음 하나하나를 충실히 다루며 느리게). 바이올린이 다시금 스코틀랜드 민요 선율 ‘조니가 없어 나는 적적하다네(I'm down for lack o'Johnnie)’를 노래합니다. 처음에는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노래가 잔잔히 흐르다가 차츰 분위기가 고조되면 독주 바이올린은 격정적으로 드높이 날아오르고 다시 차분한 어조로 가라앉아 조용히 마무리됩니다.
제4악장 Finale-Allegro guerriero(빠르게 전투적으로). 바이올린의 힘찬 독주로 시작되는 주제 선율은 중세 스코틀랜드의 전투가 ‘우리 스코트 사람들은 월러스의 피를 흘렸다.(Scots Wha hae wi Wallace bled)’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프와 함께 독주 바이올린은 눈부신 기교를 뽐내며 활기차고 현란하며 리드미컬하게 진행되지만, 중간에 조금 고요해지면서 피날레 직전에는 템포가 아다지오로 느려진 가운데 잠시 첫 악장의 주제를 회상하다 끝을 맺습니다.
Stefan Kackiw(vn), Rumon Gamba(cond)
Orquesta Finfonica de Gali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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