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38) :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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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238)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 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한 시절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겨울이었지만 따뜻하고 다정했던 시절을, 그리고 봄이었지만 마음 추웠던 이별의 순간을 돌이키고 있습니다. 지금 청파동의 그 시절로 다시 가고 싶어 합니다. 그 열망은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가서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 강렬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이지만, 찔리고 기어서라도 돌이키고 싶다는 열망은, 화자를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헤매게 하면서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라는 물음을 되풀이하게 합니다. 물론 이 물음은 그 시절의 상대방에게 던지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향해 던지는 것이기도 하겠죠. 존재의 한 순간으로서의 청파동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군요.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넘어서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시절, 그때의 그 청파동(같은 곳)을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까요?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지요? ()

 

겨울 동안 화자는 다정한 사랑을 하고 있었지요. ()의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져 주고,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았습니다. 겨울은 차가운 계절이지만, 이마저도 이겨낼 따뜻한 사랑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네요. 청파동은 차가운 겨울에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봄이 왔을 때는 청파동에 가면 안 됩니다. 봄이 오니 네가 떠났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와 있을 때 보여주던 다정한 웃음을 이제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갔으니까, 따뜻한 봄이 왔으니까 그 다정한 웃음을 더 보여줘야 하는 게 맞지 않아요? 근데 너는 왜 따뜻해질수록 더 차가워지는 걸까요. 너는 자주 내 앞에서 인상을 구겼고, 너는 쇠꼬챙이 같은 말들로 내 마음을 찔렀어요. 나는 소리 없이 네게 찔려왔어요. 네게 그렇게 찔렸지만, 난 그래도 네가 좋아. 네가 좋아서, 네게 찔린 내가 지렁이처럼 기어다닐 수밖에 없어도 결국에는 네게로 가고 싶어요. 빛나는 네게, 따스한 빛이 나는 네게로 어떻게든 들어가서 찔려 죽어도 좋으니 네 안에서 죽고 싶어요. 천천히. 그리고 오래. 내가 널 다시 만나기 위해 다녔던 청파동을 너는 기억하는가. 우리가 포개져 잠들었을 때 우리 위에 하얀 눈이 쌓였던 그 청파동의 겨울을 넌 기억하는가. 너는 그 청파동을 기억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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