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28) : 봄비 / 이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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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228)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낯익은 고향의 봄 풍경, 낯익은 시골의 옛 정서가 익숙한 가락으로 전개되고 있는, 맑고 고운 시로 느껴집니다. 이 시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밝은 데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에 조금도 구김살이라곤 없습니다. 토속적인 정서와 어우러져 미적(美的)으로 완성된 느낌을 받습니다. 애틋한 정감에 차 있고, 말 하나하나가 이미 우리와 깊이 정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화자가 그리는 강나루 언덕, 보리밭의 종달새, 꽃밭과 처녀에는 실재하는 대상이라기보다 화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 즉 관념화된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정작 작품의 주제는 봄비라기보다는 시인의 어떤 상실감입니다. 시인은 안 올 사람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기에 시인의 마음에 존재하는 그리운 대상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게 있다면 시골을 끈질기게 지키고 있는 어렵고 고달픈 삶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밝고 아름다운 시이면서도 사람이 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옛날식의 서정시입니다. ()

 

이 시는 봄의 아름다운 정경을 그리면서 이를 배경삼아 돌아오지 않는 님에의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어요. 표면상으로 볼 때는, 머지않아 다가올 아름다운 봄날의 모습에 대한 상상일 뿐이지만, 1연에서 보이는 서러운 풀빛이라는 표현이 그다지 단순한 봄날의 정경 묘사로 이루어진 시가 아님을 말하고 있어요. 봄날에 돋아나는 풀빛이 왜 서러운 것인가요? 그것은 그의 마음에 어떤 슬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제4연에서 확인되는데, 봄이 오면 따뜻한 날씨와 함께 대지 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봄의 상징인 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비유함으로써, 그의 임은 이 세상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는 봄의 아름다움이 아름답고 기쁘게만 여겨지지는 않는 겁니다. 반면에 2연과 3연에 나오는 종달새와 꽃밭의 풍경은 그야말로 조금도 그늘도 없이 밝고 아름다운 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2, 3연도 결국 4연의 내용 확인을 통해 서글픈 봄 풍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시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봄 풍경이라는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푸르른 빛의 연속적인 이미지가 서러움의 정서를 계속 심화시키면서 마지막에 죽음의 의미로 집약되고 있어요. 이 시의 애상은 시적 자아의 죽음에 대한 의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봄비 내린 뒤에 더욱 더 푸르게 짙어 갈 자연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적 자아는 죽음으로 그 인식을 옮겨 가는데, 봄비를 받아 생명력으로 약동하는 자연물에서 생명이 아닌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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