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23) :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 이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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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223)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 이가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不在)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설혹 첫사랑의 기쁨이나 고통처럼 격렬한 것이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져 버리는 것조차 시인의 노력을 통해 풍부하고 깊은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던지 혹은 그 사람과 헤어졌던지 간에 그리운 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사랑을 잃은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친구는 젊었을 적에 첫사랑을 잃고 이 시를 읽고 난 다음, 유리창---버스의 차창이건, 강의실의 유리창이건, 집에 있는 커다란 거울이건---만 보면 이마를 갖다 대고 모래알 같고 물방울 같은 그녀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곤 했답니다. 선뜩한 차가움이 이마를 통해서 전해오는 순간 그는 얼마나 괴로운 전율로 몸을 떨었을까 충분히 상상이 가는군요. ()

 

이 시는 이별의 슬픔을 애절하게 표현한 아름다운 연시(戀詩)이지요. ‘죄의 탯불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로 표현된 그날은 아마도 화자가 사랑했던 그 누군가와 이별의 날일 겁니다. 이별의 밤에, 화자는 하늘의 별을 보며 일천 번도 넘게 입을 맞춥니다. 상대방에게 해줄 수 없는 입맞춤을 하늘의 별에 대신한 것입니다. 별은 이제 사랑했던 그 사람을 대신하는 하나의 개인적 상징이 되는 거지요. 별은 밤이 되면 다시 빛을 내며 나타납니다. 화자는 그런 별을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로 표현합니다. 화자는 밤이 되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별을 보며,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부릅니다. 모래알 같은 이름, 물방울 같은 이름을 부릅니다. 헤어진 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부르는 화자의 모습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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