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s / Symphony No. 4 Op. 98 (247)
- 서건석
- 2025.01.26 05:36
-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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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247)
247
♣ Brahms / Symphony No. 4 Op. 98
♬ “거인이 내 뒤로 뚜벅뚜벅 쫓아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게. 그때 그 기분을 자네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걸세.” ― 요하네스 브람스
19세기의 다른 교향곡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브람스 역시 베토벤이라는 거인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광대한 우주의 소리를 담아낸 베토벤의 교향곡이야말로 독일 교향곡의 모범답안으로 여겨지던 당대의 분위기에선 신작 교향곡이 나오면 곧바로 베토벤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브람스가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0여 년의 세월을 투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은 유난히 베토벤의 교향곡을 닮았습니다. 이 곡에서 팀파니는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의 ‘운명의 동기’를 닮은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합니다. 그 때문에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며 음악평론가인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가리켜 ‘베토벤의 제10번’이라 불렀습니다. 이후 브람스는 교향곡 두 곡을 더 작곡했는데, 그중 교향곡 2번은 ‘브람스의 전원’, 3번은 ‘브람스의 영웅’에 비유되면서 여전히 베토벤의 교향곡과 유사하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교향곡 4번은 진정한 브람스만의 음악이며 아무도 이 교향곡을 베토벤의 작품에 빗대지 않았습니다. 이 교향곡을 채색하고 있는 클라리넷과 비올라의 중음역, 첼로와 호른의 저음역이 강조된 무채색의 사운드, 그 사이사이에 간간이 묻어나는 진한 고독감은 브람스 음악 특유의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1885년, 이미 세 곡의 훌륭한 교향곡을 통해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입증해낸 브람스는 이제 인생의 말년에 접어들어 자신만의 음악적 깊이를 교향곡에 담아내고자 그의 마지막 교향곡의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교향곡 4번이 완성되자 브람스의 옹호자였던 당대의 음악평론가 한슬리크는 이 작품을 가리켜 ‘어두움의 근원’이라 불렀습니다. 브람스의 단조 교향곡들 가운데 유일하게 피날레에서 장조의 환희로 변하지 않고 단조의 우울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로써 브람스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베토벤 풍의 구도를 버리고 어둠으로부터 비극으로 침잠해 가는 자신만의 교향곡 모델을 확립하게 된 것입니다.
브람스는 낭만주의 전성기에 태어나서 후기 낭만주의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의 생애에는 낭만주의가 도도히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브람스는 고전주의 성향을 고집하면서 그 나름대로 ‘신고전주의’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일관하였습니다. 그가 철저하리만큼 표제 음악이나 낭만적인 화성을 배격했던 배경에는 이러한 고집과 철학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브람스의 음악은 하나같이 무겁고 내면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어, 아련하고 낭만적인 리릭시즘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바그너를 비롯한 동시대 작곡가들이 너무도 음악적 희유에 지나친 나머지 감성에 물들고 심지어 너무 드라마틱한 음악들을 써냈던 것을 생각하면, 브람스가 차지했던 당시의 위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쉽게 짐작이 갑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브람스에 가장 근접한 작품은 바로 교향곡 제4번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향곡 제4번에 농축되어 흐르는 일관된 정서가 지나치리만큼 고전적이며 엄숙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인데, 노경(老境)의 무르익은 내적 세계가 가장 잘 표출된 마지막 걸작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교향곡 1번과 같은 비장함이나 교향곡 2번에서 느끼는 전원적인 행복감, 교향곡 3번에서 풍기는 영웅적인 호쾌함 등과는 그 정취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보다 더 내성적이고 더욱 심화된 브람스의 개성이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구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이중 대위법적인 기법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고전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성숙될 대로 성숙된 상태에서 고전에로의 회귀를 강력히 추구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돌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고전주의 이전 바로크 기법인 파사칼리아로 종결함으로써 좀 더 본능적인 몸부림으로 고전적인 면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고 있습니다.
교향곡 제4번이 완성되었을 당시 52세였던 브람스는 자신의 지휘로 궁정극장에서 초연을 하게 됩니다. 초연에 참석하였던 명지휘자 한스 폰 뵐로우는 이 곡을 가리켜 ‘강철과 같은 개성, 고요함 속에 꿈틀거리는 무한한 생명력’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교향곡을 극찬하였습니다. 50세를 넘긴 브람스의 중후한 악풍이 전곡에 스며 있어 오래된 고급 레드 와인과 같은 텁텁함을 짙게 풍겨주고 있습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늦가을 황량한 벌판을 걸어가는 어느 중년 남성의 고독과 체념이 깊은 강물처럼 흐르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 곡이야말로 브람스가 일생을 두고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적인 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악장을 듣고 있으면 왜 그가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못한 채 여기서 붓을 놓았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브람스가 임종할 때 누군가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그는 “내 생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이라 했다 하는데 그 곡이 바로 교향곡 제4번이었습니다. 이 교향곡에는 브람스의 전 생애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얼룩져 있기 때문에 이 곡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자극과 감동의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이 교향곡은 이전의 교향악 작곡가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브람스만의 독창적인 구성에 의한 것이면서도 놀랍도록 정교한 그의 관현악 어법이 총결집된 클래식 역사상 손꼽히는 걸작이지만, 작곡 기법에 관한 기술적 측면을 떠나 정서적, 감정적으로 일단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처음부터 단번에 휘어잡는 강한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향곡 전반을 지배하는 늦가을의 정경과도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로 인해 이 마지막 4번 교향곡에는 아예 '가을 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향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멜랑코리한 낭만적 정서 이상의 매우 심각하면서도 종교적이기까지 한 엄숙한 메세지를 그 속에 담아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교향곡은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52세의 브람스가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고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브람스는 죽음을 앞두고 <4개의 엄숙한 노래>라는 가곡을 작곡하였는데, 그 가운데 "오 죽음이여, 오 죽음이여"로 시작하는 3번 곡의 해당 가사에 이 4번 교향곡의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3도 하행의 B-G/E-C 동기와 E단조의 조성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브람스는 교향곡 4번 악보에서 위의 3도 하행의 B-G/E-C 동기가 등장하는 1악장의 첫 부분에 '오, 죽음이여, 죽음이여'라고 직접 기재해 놓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이 교향곡의 1악장에 담긴 엄숙한 정서의 단초를 찾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교향곡 4번 e단조>는 50대에 접어든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했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입니다. 특히 이 곡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지요. 1896년 5월 20일에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브람스가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리워했던 그녀가 뇌졸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맙니다. 클라라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브람스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지요. 아버지가 앓았던 간암이 아들인 브람스에게도 찾아와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에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필하모닉의 연주회,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렸던 음악회에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그날 연주됐던 곡이 바로 <교향곡 4번>이었습니다. 그 연주회는 아직 살아 있는 브람스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 행사였습니다. 그날 브람스의 모습은 뼈만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3일, 브람스는 친구나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눈을 감습니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가정부가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Carlos Kleiber(cond), Bayerische Rundfunk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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