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199) : 상한 영혼을 위해서 / 고정희

그림273.jpg



나의 애독시(199)

 

 

상한 영혼을 위해서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동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어찌 보면 삶이란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이기에 상한 영혼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우리 모두는 상한 영혼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시인은 이런 사람에게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통을 떨쳐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싸안고 나아가라는 메시지 말입니다. 읽어 가면 자신도 모르게 힘과 여유, 그리고 용기 같은 뭔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절망과 낙담을 극복하고 생명감으로 충일되리라는 기대도 함께 갖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속에서 상한 영혼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얻습니다. 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상한 영혼이 점차 치유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갈대처럼 흔들립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죠. ‘충분히 흔들리면서 고통에게로 가자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영원한 눈물이나 비탄은 없는 것이고, 게다가 캄캄한 밤에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일이 아니겠습니까요. ()

 

이 시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제목이 나타내듯,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수용하며 견디어 나가는 시적 화자의 태도를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깨달음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화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고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포용하기를 원합니다. 이는 그렇게 할 때에 고통과 설움의 땅을 벗어나 뿌리 깊은 벌판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밑동이 잘리어도 새순은 돋아나는 자연의 이치와 영원한 눈물비탄도 없는 인간사의 이치, ‘캄캄한 밤이라 할지라도 마주 잡을 손 하나가 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러한 화자의 메시지는 내면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상처받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언제나 곁에 숨 쉬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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