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 Piano Con. Op. 54 (219)
- 서건석
- 2024.12.29 06:13
- 조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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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219)
219
♣ Schumann / Piano Con. Op. 54
♬ 음악가 중에서 가장 교양이 풍부한 슈만은 어려서부터 음악적 천품을 나타냈습니다. 처음에 그는 법률을 공부하다가 아버지가 별세한 후 20세 때부터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맹렬하게 연습을 했는데, 너무 무리하여 손가락을 다쳐서 작곡가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지요.
한편 음악평론가로서 당시 음악계의 형식적이고 상투적이며 보수적인 경향을 깨뜨려 음악계의 공기를 혁신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음악 신보 Neue Zeitschrife fur Musik’를 창간하여 펜을 들고 자유롭고 새로운 음악의 발전을 위해 옛 사상과 대결했습니다. 그의 작곡 수법은 지금까지의 고전양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상을 모체로 하여 거기에 형식을 맞추었습니다. 신선한 리듬과 색채감이 풍부한 화성법 등은 그의 작품의 품위를 높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리한 감수성으로 선율과 하모니를 가장 개성적으로 조화시켰습니다. 낭만파 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는 그의 음악에 표제적 구상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슈만의 음악적 주력은 피아노에 있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뒤를 계승한 리이트 작곡가로서의 비중도 매우 큽니다. 그리고 그 외에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그의 은사이자 장인이 될 비이크에게 소송을 제기하여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클라라는 그 후 남편의 작품을 계속 연주 발표하여 슈만으로 하여금 명작을 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만년에 이르러 슈만은 정신병으로 라인강에 투신했는데, 생명은 구했지만, 그 후로 폐인이 되어 2년간 병원에서 고생하다가 비참한 생을 마쳤습니다.
슈만의 최대 걸작인 이 협주곡은 처음에 따로따로 작곡한 것을 후에 합쳐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제1악장은 31세 때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으로 작곡하였고 4년 후인 1845년 봄에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듣고 이 환상곡으로 협주곡을 만들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해 5월 드레스덴에서 2개의 악장을 작곡하여 협주곡으로 완성했습니다.
고도의 피아노 기교를 요하는 이 작품은 1847년 1월에 슈만의 지휘하에 클라라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되었습니다. 이 곡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에 환상적이며 내성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했는데, 탁월한 기법에 낭만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일품입니다. 고도의 연주 기술과 풍부한 인간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낭만파 시대의 대표적인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이 작품은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열렬한 사랑 고백입니다. 제1악장의 오보에가 노래하는 ‘클라라의 주제’는 가장 달콤한 속삭임입니다. 이는 곡 전체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슈만의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두 인간형, 행동하는 인간 ‘플로레스탄’과 꿈꾸는 인간 ‘오이제비우스’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클라라의 주제’를 발전시킵니다. 당대 최고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의 실력에 걸맞게 뛰어난 테크닉을 요구하면서도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곡입니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한 후 작곡 영역을 확대하였습니다. 주로 피아노 독주곡과 가곡만 써 온 슈만은 그해부터 두 개의 교향곡을 비롯해 관현악곡과 합창곡까지 그 영역을 넓힙니다. 클라라는 “그의 상상력을 피아노에만 가둬 둘 수 없다.”라고 말했고, 슈만은 이에 화답하여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 환상곡 A단조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이 맘에 들었던 클라라는 제대로 된 협주곡으로 개작하길 요구했고, 슈만은 4년 후 1845년 간주곡과 피날레를 덧붙여 협주곡으로 완성했습니다. 1829년 F단조 협주곡, 1831년에는 F장조 협주곡, 1833년에는 D단조 협주곡을 스케치한 적이 있지만 슈만은 매번 첫 부분만 쓰다가 중단하였고, 1839년 자신의 속내를 고백했습니다. “훌륭한 독주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떤 협주곡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거라면 쓸 수 있지만….” 이토록 소심했던 슈만이었지만 비로소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클라라의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슈만은 비르투오소들을 위한 협주곡 형식의 자기 과시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음악적인 효과와 구조적인 형식을 추구하기 위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동등한 지위로 부여하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베토벤,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작품을 의식적으로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낭만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였습니다.
슈만은 20대 초반 2년 정도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딸 클라라 비크는 ‘피아노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13살 때 이미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는 등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슈만은 불행히도 손을 다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16살 때 스스로 자신의 협주곡을 초연했고 또한 슈만의 음악을 대신 연주해서 널리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둘 사이는 자연스레 사랑으로 발전했다. 이후 클라라 아버지의 반대에 맞서 법정 투쟁까지 벌인 끝에 결혼에 성공하게 되지요. 결혼 직후인 1839년 슈만은 클라라에게 이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의 이름으로 많은 작품들을 출판할 것입니다. 후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된 우리의 작품 중 어느 게 내 것이고 어느 게 당신 것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두 사람은 함께 작곡을 했고, 함께 일기를 쓸 정도로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결혼 1년 후 클라라는 남편이 작곡한 환상곡을 1841년 8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했습니다. 낭만 시대 최고의 시적 감수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걸 알아본 클라라에 의해 1845년 12월 드레스덴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라이프치히 신년 음악회를 필두로 유럽 전역에서 환호를 받았습니다.
결혼생활이 10년을 넘길 무렵, 슈만은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라인강에 투신하는 등 불행한 말년으로 치달았습니다. 클라라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별로 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1856년 런던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 때 별로 좋은 평을 받지 못하자 클라라는 크게 낙담했습니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에게 3악장 피날레를 개작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요아힘은 지혜롭게도 이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이 곡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슈만이므로 자신이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클라라는 남편의 손길이 오롯이 남아 있는 원곡대로 이 협주곡을 평생 연주했습니다.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기억되는 클라라 슈만, 그녀에게 이 곡은 슈만의 뜨거운 사랑과 아픈 추억, 그 자체였습니다.
Arthur Jussen(p), Nicholas Collon(cond)
Residentie Ork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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