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185) : 나그네 / 박목월

자연경관34.jpg



나의 애독시(185)

 

 

나그네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강나루 밀밭 길 술 익는 마을로 이어지는 남도 삼백 리 외줄기 길을 유유히 걸어가는 나그네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형상화시켜 놓고 있습니다. 운명과도 같은 유랑길을 시의 나그네는 그저 걸어갑니다. 그 유랑길은 아름답기조차 합니다. 하루의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발 앞에 노을에 물든 밀밭이 펼쳐집니다. 삼백 리 길을 홀로 걸어가는 나그네는 어디서 한 잔 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얼근하게 술에 취해서 노을에 불타는 밀밭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바로 이 장면이 무척 낭만적입니다요. 나그네는 그 풍경에 압도되어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또 흘러갈 뿐입니다. 이 시만큼 한국인의 낭만적 정서에 닿는 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통적 심성이라고 하는 나그네 정서를 아름답게 표현했기에 그런가 봅니다. 달이 구름과 더불어 떠가고 있는 정경 속으로 나그네가 걸어 들어가고 있으니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기똥차지요.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지요. 박목월의 이 시는 조지훈의 <완화삼>이란 시에 화답한 시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 시를 발표할 당시, 삶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고 하네요. ()


박목월의 나그네는 조지훈의 <완화삼>에 화답한 시입니다. <완화삼>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가 이 시에 와서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로 변화되었습니다. 박목월은 청록파 혹은 자연파로 불리는 시인으로서 그 유파의 이름에 걸맞게 <나그네>에도 시인 특유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1940년대의 상황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군의 시인들이 등장하게 된 연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박목월의 나그네 식민지 현실 속에서 주권을 상실한 민중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데는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주권을 잃고 나그네로 전락한 백성으로서 국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한 방편이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파 시인들의 공통적인 관심이 이해는 된다고 하겠으나 이들의 자연은 생산 현장으로서의 우리 농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시인의 관념 속에서 미화된 이상적인 자연입니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이 시는 간결한 언어로써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두 번이나 반복된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인간은 자연에 비유되어 행운유수(行雲流水)하는 유유자적함을 보여줍니다. 주인의 자리를 빼앗기고 나그네 신세가 되어 떠돌 수밖에 없는 이의 슬픔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강나루를 건너 밀밭 사이로 난 외줄기 길을 삼백 리나 걸어가서 만난 것은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입니다. 이 낭만적인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는 합니다. 박목월 시인의 언어 경제가 이룩한 최고의 경지입니다. 잘 익은 술의 빛깔을 연상케 하는 저녁놀, 그밖에 색채감을 느끼게 하는 어휘들, 명사로 끝냄으로써 연과 연 사이에 여백을 주는 솜씨 등이 돋보입니다. ()

 

완화삼 (부제: 목월에게)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 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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