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708) : 수박 / 윤문자


수박.jpg




나의 애독시(708)

 

수박 / 윤문자

 

나는 성질이

둥글둥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허리가 없는 나는 그래도

줄무늬 비단옷만 골라 입는다

마음속은 언제나 뜨겁고

붉은 속살은 달콤하지만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배꼽을 보여주지 않는다

목말라 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겉모양하고는 다르게

관능적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오장육부를 다 빼 주고도

살 속에 뼛속에 묻어 두었던

보석까지 내놓는다


 

엄청 덥네요, 태양이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시기임에도 지구의 기울기로 인해 햇살 받는 시간이 길어져 더 달구어진다는 게 과학의 가르침입니다. 사랑도 뜨거워지려면 자주 쬐어야 하는데 그것은 자연에서 배웠어요, 극한 환경을 주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조건을 주는 조물주의 지혜가 더 빛나는 계절, 수박은 연산군 때 재배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순수 토종은 아니지만 오래 민중과 친숙한 과일이지요. 우물 안 두레박에 담겨다가 이제 냉장고 신세를 지는 과육은 겉모양하고는 다르게 목마른 자들의 구원 식품이 되었지요. 사물을 의인화하여 청량하게 다가와 사랑이 고픈 자들에게 해갈을 주는 한 편의 시, 수박 같은 그런 여자를 붉게 만나고 싶군요. ()

 

이 시는 직선적이라고 할까요. ‘무엇은 어떠하다라는 문법을 반복적으로 전개해 가니 처음 시를 쓰는 이들이 한번 사용해 볼만한 기법. 그러나 이 시는 그러한 단계를 넘어 감동을 자아내고 있으니 기법으로 그리 단순한 것만도 아닙니다. 수박이 의미하는 바의 속성을 내 삶과 연관시켜 생의 본질을 관통하는 것. 요즈음 제철이 어디 있고 제철 아닌 게 또 어디 있어요. 딸기도 사시사철. 귤도 주구장창. 그러니 수박도 언제나 덩그러니 배를 내놓고 진열대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하여 수박은 항상 주변의 위치에 보무도 당당히 우리에게 다가옵니다요. 이 시는 우화처럼 읽히는 재미가 있습니다. 백지 한 장을 주고 자신을 소개하라는 교수님 말씀에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를 쓰게 된 배경과 과정은 중요한 게 아니지요. 요는 감동, 감동을 주어야 하지요. 감동 없는 시가 난무하고 무미건조한 언어들이 활개를 치는 때에 이렇게 단순한 듯 정감 있게 다가오는 시가 있다니. 꾸밈이나 재주 없이 시가 우릴 잡아당깁니다. 이 시는 기본에 충실합니다. 그건 의인화와 비유의 원리. 이 시가 기댄 곳은 바로 그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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