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666) : 열흘 붉은 꽃 없다 / 이산하


붉은꽃2.jpg




나의 애독시(667)

 

 

열흘 붉은 꽃 없다 / 이산하

 

 

한 번에 다 필 수도 없겠지만

한 번에 다 붉을 수도 없겠지

피고 지는 것이 어느 날, 문득

득음의 경지에 이른

물방울 속의 먼지처럼

보이다가도 안 보이지

한 번 붉은 잎들

두 번 붉지 않을 꽃들

너희들은 어찌하여

바라보는 눈의 깊이와

받아들이는 마음의 넓이도 없이

다만, 피었으므로 지는가

제 무늬 고운 줄 모르고

제 빛깔 고유한 줄 모르면

차라리 피지나 말지

차라리 붉지나 말지

어쩌자고

깊어가는 먼지의 심연처럼

푸른 상처만 어루만지나

어쩌자고

뒤돌아볼 힘도 없이

그 먼지의 무늬만 세느냐

 

 

 

여름에 피는 꽃은 대개 붉습니다. 능소화도 붉고, 석류꽃도 붉습니다. 여름꽃이 처음부터 그렇게 붉었을까요? 아닐 거 같습니다. 여름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꽃이 붉어진 게 아니었을까요. 시인은 열정적인 빛깔로 피어났다가 금세 지고 마는 붉은 꽃을 보며 서운한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차라리라는 말이 그런 원망의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꽃이란 땅 위에서 붉게 피어나는 꽃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세상에 태어나 세상에 나섰다가 세상하고 쉽게 타협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지요. 세상에 열흘 붉게 피는 꽃은 없으니 지구의 모든 물질은 생긴 이상 언젠가는 쇠합니다. 만개한 꽃을 보고 사랑하는 건 누구나 가능하나 하나둘 꽃잎이 떨어지며 꽃이 시들기 시작할 때 그 꽃을 사랑하는 이는 많지 않게 됩니다.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나 언젠가는 이 꽃이 질 수 있는 것이니 꽃이 시든 후에도 그 꽃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겠지요. 시인이 간절히 바라는 눈의 깊이와 마음의 넓이를 가진 꽃은 과연 어떤 꽃일까요? ‘깊어가는 먼지그 먼지의 무늬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납득이 가는지요? ()

 

이건 해설이 아니라 시의 제목을 보고 평소의 제 생각을 한번 풀어본 것입니다. 예외는 있겠지만 꽃나무는 대부분 열흘 이상 꽃을 피우지 않지요. 그래서 흔히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권불십년(權不十年)으로까지 이어져 영원한 권력이 없다는, 권력의 무상함을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꽃이 피었던 그 열흘의 자태로 그 꽃나무를 기억하는 편입니다. 겨우 열흘 붉었던 꽃이 바로 그 꽃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지요. 어쨌든 꽃은 피어난 자태로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가 자리 잡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하려고 애쓰지요.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는 그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성공했다면 오로지 그 성공만이 입력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성공의 상태로 평가되지요. 그러나 그렇게 평가되는 그 자신은 자신의 속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으로 가장 내세우고 싶은 것, 내세워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허나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시절은 자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화려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을 본인은 자신의 본모습으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데, 한 인간의 본모습은 화려한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사에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여러 면에서 그의 본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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