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665) : 노을 / 배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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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665)

 

노을 / 배용제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해가 질 때 지상의 먼지들이 붉게 타오르는 건

아직 뜨거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지들의 혈맥 속에 진한 피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소멸을 위한 춤이 아니다

무거운 형체를 꺼내놓고 잠시

한때의 가벼움을 향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

환생의 사원에 들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고 믿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종교를 나는 믿는다

 

 

 

저녁노을이 흔적 없이 사라진 거기, 자욱하게 밀려오는 어둠 앞에서 당신은 자주 허망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섬돌 밑 귀뚜라미 또한 머지않아 흔적 없이 자신의 한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여(許與)된 삶의 길이란 얼마나 조금인가요. 혈관 속에 피가 진하게 돌아 아직 뜨거움이 남아 있는 건 사라지지 않으려는 표시입니다. 소멸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사랑할 시간이 충분히 많지 않다고 말하나, 어찌 보면 예술도 종교도 미래에 대한 허기의 산물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멸의 징표인 노을 속에 환생의 사원을 짓고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라고 믿는 시인의 노래 또한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지요. ()

 

저 핏빛 노을에 대해 사람들은 소멸을 말하지요. 소멸하는 것들이 마지막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노을에 관한 가장 익숙한 관념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노을들이 반드시 소멸의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노을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뜨거운 탄생의 시간을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배용제의 노을에서 역시 노을에 대한 진부한 관념은 수정됩니다. 노을은 소멸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제의와 환생의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을 속에는 뜨거움진한 피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라는 명제를 보편적인 사람들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진술 속에는 그 종교의 막막함과 허망함에 대한 인식도 동시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노을이 그러한 것처럼,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라는 상투적인 진리에 대한 이 정당한 반론은 때로 삶에 대한 새로운 최면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보편적인 종교는 최면을 포함합니다. 사람들의 어떤 종교와도 무관하게 타오르는 저 노을. 그리고 지상의 익숙한 관념을 부정하면서 그 풍경의 안쪽을 응시하는 시인의 눈을 보기만 하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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