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39)

♬ 약이 없는 병 / 김용택

그리움이, 사랑이 찬란하다면

나는 지금 그 빛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파서 못 견디는 그 병은

약이 없는 병이어서

병 중에 제일 몹쓸 병이더이다

그 병으로 내 길에

해가 떴다가 지고

달과 별이 떴다가 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수없이 돌아 흐르며

내 병은 깊어졌습니다

아무리 그 병이 깊어져도

그대에게 이르지 못할 병이라면

이제 나는 차라리 그 병으로

내가 죽어져서

아, 물처럼 바람처럼

그대 곁에 흐르고 싶어요

◑ 사랑에 빠졌을 때는 목숨보다 사랑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누구나 그런 과정을 일생에 한번쯤은 겪게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외면할 때, 그 사람이 자신에게 무심할 때, 약도 없는 병을 앓아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으며 괴로워하지요. 세월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그 세월의 약조차 못 미더워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 사람 곁에 영원히 자신을 머무르게 하고 싶은 망상에 붙들리게 되는 거지요. 차라리 죽어서 물처럼 바람처럼 그대 곁을 흐르고 싶은 병을, 아, 이젠 우리에겐 발병할 수 없는 그 몹쓸(?) 병을 지금이라도 한 번 더 앓아 봤으면. 주책! 주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