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38)

♬ 조그만 마을의 이발사 / 이준관

나는 조그만 마을의 이발사가 되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햇빛과 바람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턱수염을 밀어주는

이발사가 되고 싶다.

비록 내 가위질은 서툴겠지만,

나귀처럼 가위는

스프링이 낡은 의자에 앉아 있는

그들의 삶을 위로해 주는 말을

속삭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이발소에서

처음 읽었던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던

허름한 액자에 걸려 있던 시.

삶은 끝내 가난한 그들을 속이고

나도 속였지만

나는 조그만 마을의 이발사가 되고 싶다.

다섯 평 좁은 이발소에

난로를 피우고

주전자에 물을 끓이며,

수증기 뽀얀 유리창 너머

자작나무처럼 하얀 성탄절의 눈을

기다리겠다.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의 머리를

성탄목(聖誕木)처럼

아름답게 깎고 다듬어 주겠다.

◑ 모두들 커서 거창한 무엇이 되려고 하는 세상에 이런 작은 소망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도 많이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섯 평 작은 이발소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의 턱수염을 깔끔하게 밀어주고, 가난한 아이들의 머리를 성탄목처럼 깎아주는 조그만 마을의 이발사.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도 얼마든지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다가 예기치 않던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기쁜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게 더 큰 기쁨임을 잊고 지내기 일쑤입니다. 삶이 그대도 나도 속였지만 노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더 생겨나길 바라는 거지요. 그러면 성탄절 날 이 땅에 내려오시던 하느님이 그걸 보시며 가만히 환한 웃음 지으실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