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33) : 겨울밤 / 박용래






겨울밤.jpg




나의 애독시(533)

 

겨울밤 /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그의 시를 읽으면 외양간 처마 밑에 걸어둔 마른 시래기에 싸락눈 들이치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다 떠난 적막한 고향 마을 밤 깊도록 잠 못 들고 계실 어머님의 기침소리가 들립니다. 눈이라도 오면 문 열고 나가 뭔 놈의 눈이 이리 밤새 퍼붓는다냐라며 고무신에 쌓인 눈을 터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슬프고도 애잔한, 그러나 진정한 시인의 삶을 살고 간 사람 박용래. 그는 충청도 시골의 울음 많은 시인이었습니다. 겨울밤에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을 간결하게 그려 놓은 작품입니다.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은 여백의 공간 속에서 처리될 뿐, 그 감정의 크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고향에 대한 회상의 감정이 객관화되어 간결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전반적으로 쓸쓸함과 애틋함, 그리고 삶의 무상함이 작품의 밑면에 깔려 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 또는 향수가 억제된 형태로 형상화되고 있어요. ()

 

이 시는 겨울밤에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을 간결한 소묘법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이 그려 놓은 이 소묘 속에서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은 여백의 공간 속으로 침윤되어 있을 뿐, 그 감정의 크기나 깊이가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쓸쓸함과 애틋함 또는 삶의 무상감이 배경처럼 작품에 깔려 있으나, 그것이 감상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것을 4행의 절제된 시 형식과 압축된 표현으로 적절히 제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달빛바람등의 전원 상징의 시어와 고향마늘밭추녀발목등의 인간적 체취의 소재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근원적 향수는 달빛의 시각적 이미지와 바람의 청각적 이미지의 대응을 통해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를 유발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본질적 고독과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외로움이 전원 상징의 시어 속에서 향수와 그리움으로 변모해 가슴 속으로 파고듭니다. 이처럼 박용래의 시는 전원 상징의 시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친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본질이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와 그리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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