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31)

♬ 노인의 일기 / 채영묵

세월은 어느새

쓰다 남은 연필 꼭지,

여백 없는 일기장에

낙서만 갈겨 놓고도

지금 와

후회는 고사하고

눈치 보느라 바쁘다.

숙제 못 해온

기죽은 아이들같이.

◑ 노년기란 어차피 포기의 계절이요, 상실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늙는다는 건 한 단계 한 단계 ‘포기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상실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때는 그저 재빨리 체념하는 게 상수입니다. 건강도 차츰 포기하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즐길 거리, 하고 싶은 일, 먹는 것에서 포기할 것이 나날이 늘어갑니다. 이처럼 한 가지 한 가지 차례차례 단념하고 포기해 가는 과정이 바로 노년기가 아닌지요. 포기하고 상실하고 체념해 가는 끝은 어디일까요. 그 끝은 내 목숨을 포기하고 체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삶의 종착역이지요. 아시다시피 이것이 우리네 인생 노년의 모습이 아니겄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