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28) : 비누 / 정진규

비누1.jpg



나의 애독시(528)

 

비누 / 정진규

 

비누가

나를 씻어준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믿고서 살아왔는데

나도 비누를 씻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 다 닳아져야 가서 닿을 수 있는 곳

그 아름다운 소모를 위해

내가 복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누도 그걸 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내 당도코자 하는 비누의 고향!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바 아니며

다만

아무도 혼자서는 씻을 수 없다는

돌아갈 수 없다는

나도 누구를 씻어주고 있다는

돌아가게 하고 있다는

이 발견이 이 복무가

이렇게 기쁠 따름이다 눈물이 날 따름이다

 

 

별 희한한 시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 하고많은 소재를 다 놓아두고 왜 하필 비누를 이야기합니까요. 시인이란 새로이 발견하는 자임을 여기서 다시 감동적으로 확인하는 바입니다. 비누를 씻어주는 나를 발견한 것은 시인의 눈이지만, 소멸을 향해 함께 간다는 인식은 이 시인의 가슴에서 나왔습니다. 혼자서는 씻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요. 그리하여 비누는 비누가 아니라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맺힌 애인이 될 수도 있고 생의 반려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듭니다그려. 당신은 누구에게 비누입니까요? 당신은 지금 누구와 함께 소멸을 위해 아름다운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요? 한번 물어보고 생각해 본다고 해서 손해날 일은 아니잖아유.

 

비누는 사라짐으로써 자기 존재의 가치를 다합니다. 물에 씻겨나가며 처음보다 왜소해지다 결국 무()를 향해 사라지는 것이 비누의 운명이지요. 손을 씻는 인간도 그 손을 씻기는 비누도 동시에 소멸의 순간으로 향하고 있지요. 그러나 둘 간의 접촉을 통한 사라짐은 단지 없어짐이 아니라 소진이자 완성입니다. 한 알의 비누에서 우리네 삶의 거품 같은 운명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시입니다. 읽고 나면 아무 말 없이 손을 씻고 싶어집니다. 두 손을 함께 맞잡으며 기도하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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