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27) : 하루만의 위안 / 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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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527)


하루만의 위안 /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비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지요. 부질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인연의 실타래 속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위안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뜨거웠던 한 시절의 사랑일까요? 아니면 지금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추억의 한 페이지일까요? 시인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다 버리라고 합니다. 사랑과 미움, 그리고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자유가 진정한 위안이라 얘기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 우리가 오래 꿈꾸었던 싸리꽃 환한 세상이 올 겁니다. 푸른 잔디밭에 누워 그 향기에 취할 때가 올 겁니다.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우수에 가득 찬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바쳐진 이 시는 잊어버려야만 한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합니다. 상처의 내용은 희미하게 그린 반면, 상처를 견디는 방법은 선명하게 강조하고 있죠. 이 시의 진정한 주어는 가 아닌, “잊어버려야만 한다라는 필사적인 마음 자체라고 해도 되겠는지요. 실제로 잊는다는 것과는 별개로, 잊어버려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타이르고 있네요. 차라리 격려에 가까운 이 방법을 통해 그 사람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을 받아들이며 또 다른 날들을 살 채비를 하고 있지요. 사는 일이란 구름과 물처럼 흐르는 것이지요. 흐르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근원적인 섭리인 것이지요. 그런 섭리를 좇아 과거의 모든 인연은 잊어버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올려다보는 하늘에 그날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날은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의 날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날 지상에서의 고독과 우수가 사라지는 깨달음을 얻는 날일 겁니다. 그런데 그날이 과연 진정코 하루만의 위안이 되는 날이 될 수 있을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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