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29) : 12월 /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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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529)

 

12/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일개미처럼 끊임없이 삶의 틀을 만들어 갈 뿐이던가요. 뭔가 이뤘다고 여겨지는 순간은 잠깐이고, 알맹이는 어디론가 빠져나가 버리고 껍질만 수북하게 남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남는 때입니다.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소망 몇 개는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몇 개는 포기하고 몇 개는 지니고 있는 중이지요. 내 맘대로 이뤄질리 없어서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거지 뭐 하다가 12월이 되었군요.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라고 노래합니다.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사랑은 성숙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절망의 눈을 뜨라고 합니다. 절망의 그 빛나는 눈을 뜨면 새로운 희망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믿어야겠지요. ()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당신은 불꽃처럼 남김없이 불태우고 미련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나요? 나 자신을 고요히 끄고 스스로 선택한 무언 속에서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었는가요? 시인은 말합니다. 어둠의 색은 깜깜한 색이 아니라 환하게 밝아 오는 색이라고요. 실망하는 까닭은 기대했기 때문이고, 절망하는 까닭은 희망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대여, 가졌던 기대와 품었던 희망이 간절했다면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 사랑은 성숙하는 것이니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맙시다요. ‘확연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절망의 그 빛나는 눈을 크게 뜹시다요. 시인이 말하는 12월은 마지막 남은 시간의 심지를 연소하고 다시 눈을 뜨는 달입니다. 생애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성숙하는 사랑처럼 절망마저 빛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 달인 것입니다. 다시 희망을 품읍시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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