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19)

♬ 식탁은 지구다 / 이문재

식탁은 지구다

중국서 자란 고추

미국 농부가 키운 콩

이란 땅에서 영근 석류

포르투갈에서 선적한 토마토

적도를 넘어온 호주산 쇠고기

식탁은 지구다

어머니 아버지

아직 젊으셨을 때

고추며 콩

석류와 토마토

모두 어디에서

나는 줄 알고 있었다

닭과 돼지도 앞마당서 잡았다

삼십여년 전

우리집 둥근 밥상은

우리 마을이었다

이 음식 어디서 오셨는가

식탁 위의 문명의 전부가 올라오는 지금

나는 식구들과 기도 올리지 못한다

이 먹을거리들

누가 어디서 어떻게 키웠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뭇 생명들 올라와 있는 아침이다

문명 전부가 개입해 있는 식탁이다

식탁이 미래다

식탁에서 안심할 수 있다면

식탁에서 감사할 수 있다면

그날이 새날이다

그날부터 새날이다

◑ 오래되지 않은 옛날엔 식탁이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식탁이 지구라 합니다. 얼마 전만 해도 바다 건너온 것, 외국의 것이라 하여 좋다며 부러워 먹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오염되고 믿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지금 식탁은 온갖 문명이, 온갖 욕심과 이해관계가, 온갖 정치와 뒷거래가 가득한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납 넣은 중국산 꽃게, 광우병 걸린 미국산 쇠고기, AI에 노출된 닭과 계란,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기준치 이상으로 함유된 일본의 각종 먹을거리…. 전 지구적으로 배달된 식탁 위의 온갖 먹을거리. 그 속에 담긴 잔류 농약, 중금속과 화학물질, 항생물질, 방사성 물질, 치명적인 세균들…. 우리 몸속에 쌓여가는 중독성 물질들, 공들여 쌓아놓은 문명의 대가가 이렇다니 보통 걱정거리가 아니네요! 식탁을 지키는 일이 미래를 지키는 일이고, 그래서 미래를 제대로 열려고 하면 식탁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마실 물과 먹을 음식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