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18)

♬ 떠난 사람 / 정이진

오늘도 당신은

밀물처럼 다가왔다

썰물되어 사라집니다

언제나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내 마음은

빛보다 빨리 잡지를 못합니다

하기사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다시 와달라고 애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당신을 향한 마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어 닫지 못합니다

밤 깊어 불빛 하나 둘 꺼지면

내 눈 가득 당신 어른거리고

날이 밝도록 오지 않는 당신은

긴 여울목에 달맞이꽃 되어 있습니다

◑ 사랑의 정서를 말로 표현할 때 사뭇 유치한 면이 있습니다. 이별 역시 그렇습니다. 사랑의 명시들이 어려운 낱말들로 가득 찬 걸 보았는지요. 가령 어느 사랑 고백을 ‘당신은 참 격조 있고 품위가 있으십니다. 당신의 심오한 철학과 사려 깊음을 사랑합니다.’라고 했다고 하면, 어찌 사랑 고백이 될 수 있겠습니까요? 시 속의 주인공은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있습니다. ‘하기사 다시 오겠다고 /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당신을 향한 마음의 문은 / 향상 열려 있어 닫지 못한다’ 하니 그 기다림은 기약이 없는 상태이겠지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사뭇 유치해 보이는 사랑 얘기에 괜히 가슴이 찡해 눈물 흘리기도 하지요. 생각해 보면 쑥스러운 일이지만 무릇 사랑이란 때로는 그렇게 유치한 것이지요. 그런데 유치한 그런 사랑 얘기가 왠지 가슴을 힘껏 치는 경우도 있는데, 사랑이란 그렇게 생겨 먹은 거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