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17)

♬ 쥐에 관한 명상 / 오탁번

민박집 천장에서 쥐 달리는 소리 들리면

참말 오랜만에 동갑내기 만난 것 같다

쥐불놀이 하다가 눈썹 태우고

시래기죽 먹고 잠든 겨울밤

쥐불연기에 수염을 그슬린 쥐들이

눈썹 태운 나와 더 놀고 싶다는 듯

쥐오줌자국 난 천장을 밤새 달렸다

씨옥수수 갉아먹던 새앙쥐들도

이불 속까지 기어 들어와

내 어린 발가락을 자꾸 깨물었다

고드름이 제 무게에 툭툭 떨어지는

아침이 밝아 오면

내 꿈길까지 따라오며 보채던 쥐들은

일곱 문 반 내 고무신에

봉숭아씨처럼 예쁜

쥐똥만 남겨 놓고 숨어 버렸다

쥐 달리는 민박집 천장 아래 누우면

옛 동갑내기의 발자국소리 들린다

◑ 명상할 게 없어 쥐에 대해서 다 명상을 하나 싶지만 그럴 만도 하네요. 우리 또래는 이런 사정을 익히 이해할 만할 겁니다. 어렸을 때 천장 위에서 찍찍거리는 소리 지르며 내달리는 소리를 들었거나, 심한 경우에는 쥐오줌으로 천장 벽지에 지도가 그려지는 걸 보았던 적이 기억날 겁니다. 막대기로 천장을 툭툭 치면 쥐가 줄행랑을 놓아 별안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던 것도 기억나실 겁니다요. 이런 민박집이 있을까마는 민박집 천장 위에서 쥐 달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니 오래간만에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하등 이상스러울 게 없고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제 느낌과 비슷하네요. 그런데 그 많던 쥐들이 요즘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요? 전에는 저의 집 마당(주택에 살 때의 얘기)에 흔히 나타나던 쥐들도 요즘에는 도통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요? 밤이면 교성을 질러대는 길고양이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