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06)

♬ 흙냄새 / 정현종

흙냄새 맡으면

세상에 외롭지 않다

뒷산에 올라가 삭정이로 흙을 파헤치고

거기 코를 박는다.

아아, 이 흙냄새!

이 깊은 향기는 어디 가서 닿는가.

머나 멀다. 생명이다.

그 원천. 크나큰 품. 깊은 숨.

생명이 다아 여기 모인다.

이 향기 속에 붐빈다.

감자처럼 주렁주렁 딸려 올라온다.

흙냄새여

생명의 한통속이여.

◑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과 더불어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지요. 그러기에 흙은 사람의 친구요, 삶의 동반자입니다. 사람은 집이 있어도 흙이 없으면 살 수 없고, 먹을 것이 있어도 흙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흙에서 먹을 것을 얻기에 흙은 사람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이유로 흙을 잃어버렸습니다. 흙으로부터 소외된 우리 현대인은 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에 고독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흙 파헤치고 거기에 코 박고 맡은 흙냄새는 바로 생명의 냄새, 생명의 숨이지요. 흙의 품은 크고 넓고 깊은 생명의 품입니다. 흙을 통하지 않고는 생명에 닿을 수가 없고, 흙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으며, 흙으로부터 잉태된 생명은 모두 흙으로 모이지요. 그래서 흙냄새는 모든 생명을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준다고 말하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그 옛날 흙(땅)에서 자치기와 땅 뺏기 놀이를 했던 시절이 바로 생명의 숨을 호흡했던 때였군요.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