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07) : 부부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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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507)

 

부부 /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 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 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 사이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시라고요? 방안에 들어온 모기를 자다가도 같이 잡는 사이, 긍정하시나요? 타인이 없다면 스스럼없이 배꼽 근처라도 내보이는 사이이며 너무 많이 나온 카드비와 전기요금을 같이 걱정하는 사이, 그렇지요?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기나긴 과정이라서 그런지 평생 웬수가 되는 느낌을 지닌 가운데 부부 사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다양한 풍경의 기억을 공유합니다. 결국 부부를 묶어 놓은 끈은 모르긴 몰라도 자식이라는 줄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 말도 맞지요? 저는 요즘 펼친 제 손바닥을 자주 내려다봅니다. 손금을 보려는 게 아니라 손바닥이 텅 비어 있다는 느낌과 약해진 악력(握力)에서 허망감 비슷한 감정이 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이젠 유정하게 바라볼 어린 새끼들도 없으니 뭣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가끔씩 스쳐 지나가지만, 그러나 어쩌겠어요. 묶여 있는 상태가 오히려 축복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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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사이를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수있나요?
    백번 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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