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04)

♬ 비오는 날 / 마종기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 비가 내립니다. 사방이 어두워져 좀 가라앉은 기분으로 창밖을 내다보다가, 책을 읽다가,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천둥소리는 큰 구름이 다른 구름과 만나는 아니 부딪칠 때 나는 소리겠지요. 소리에 앞서 순간적인 번쩍임인 번개가 물론 먼저이겠지만 말입니다. 빗소리 속에서 당신과의 인연을 생각해 보면 섭섭하고 아쉬운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왔음도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고, 불은 불끼리 만나야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마음을 만나야 따뜻한 체온을 오래토록 유지할 수 있음을 당신은 내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라는 표현에서 머물러 뭔가를 잠깐 생각하게 되는군요. 간단히 유유상종(類類相從)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