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03)

♬ 집 / 조병화

어느 해는 저 도토리나무 높은 가지에

한 쌍의 노란 꾀꼬리가 둥지를 틀고

부지런히 날아들면서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어디로인지 날아가버리고

빈 둥지만 바람에 출렁거리더니

또 어느 해는 산까치가 소식 모르게

둥지를 틀고, 나뭇잎에 숨어서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나무 꼭대기 언저리에서 날아가버리고

빈 둥지만이 가지에 남아서

바람에 바람에 휘청거리더니

아, 나도 어느새 그러한 세월

머지않아 이 집을 비워두고 떠나게 되려니

비울 이 집은

바람을 어떻게 견디려나

봄, 여름, 가을, 겨울.

◑ 집은 삶의 보금자리이자 안식처이고, 피로해진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안락한 장소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는 머물던 집을 영영 떠나가야 할 때가 오고 맙니다. 포근함을 안겨주던 가구들과 우리의 정신을 빛내주던 서가의 책들, 온갖 추억이 담긴 크고 작은 물건들을 젖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지금 시인은 바로 그런 떠남을 예상하고 있지요. 새가 둥지를 떠나가듯 집을 떠나가야 할 때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애상적인 감정이 끼어들지 않을 수 없네요. ‘머지않아 이 집을 비워두고 떠나게 되려니 / 비울 이 집은 / 바람을 어떻게 견디려나’의 구절에서 코허리가 시큰해지지 않을 수가 없네요. 우리도 머지않아 시인과 같은 심정에 처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