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59) : 감나무 / 이재무

감.jpg



나의 애독시(459)

 

감나무 /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살고 있지 않겠어요. 감꽃과 그 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 내는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지요. 15년 동안을,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합니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습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고요.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기다림으로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 기울이는 것이지요. 이 짧은 시의 뒷면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사연이 담겨있고, 힘든 도시 생활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가슴 뭉클하게 다가올 겁니다. 이 시는 그리운 고향의 서정을 단순히 노래한 작품이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감나무가 있는 시골집 주인은 고향에서 삼십 년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주인이 떠난 고향의 빈집은 쓸쓸하기만 하다는 것. 그것도 벌써 15년이 지났으니 그 적막함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을 누가 말하고 있는가요. 바로 감나무가 시적 화자이고 이 시의 주체인 겁니다. 그 지점에 이 시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기본적 질서입니다. 이재무 시인은 고향의 감나무와 주인의 이별을 통해, 우리 문학의 전통적 정서인 기다림과 외로움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어요. 가을이 되면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있는 시골의 풍경. 반평생을 주인과 같이 살아온 감나무가 떠나간 주인의 소식이 그리워,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에 이르러 이러한 이별의 정서가 극점을 이루면서 절묘하게 형상화되고 있습니다. 좀 더 미시적으로 접근해 보면, ‘붉은 눈물이나 도망 기차를 탄 것이란 구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에 내포된 눈물의 이미지나 주인도망 기차를 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무엇 때문인지 이 시에선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공간의 정황으로 볼 때, 세상살이의 말 못할 어떤 서러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요컨대, 이 시는 변두리적 삶을 살아온 농촌 사람들의 고난이나 슬픔이 작품의 밑바닥에 관류하고 있어, 낭만적인 시골의 서정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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