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58) : 나무 / 김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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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458)

 

나무 / 김후란

 

어딘지 모를 그 곳에

언젠가 심은 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다.

 

높은 곳을 지향해

두 팔을 벌린

아름다운 나무

사랑스런 나무

겸허한 나무

 

어느 날 저 하늘에

물결치다가

잎잎으로 외치는

가슴으로 서 있다가

 

때가 되면

다 버리고

나이테를

세월의 언어를

안으로 안으로 새겨 넣는

나무

 

그렇게 자라 가는 나무이고 싶다.

나도 의연한 나무가 되고 싶다.

 

 

이양하의 수필에 나무의 덕성을 찬양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그러고는 불교의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고까지 한 글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시인 조이스 킬머도 나무만큼 아름다운 시를 보기 어렵다고 노래하고, “시는 나같이 어리석은 자가 지으나 나무는 오직 하느님만이 만드시는 것이라고 하였지요. 묵묵히 굳건하게 서 있는 나무의 자태는 인간사회의 경박함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 개개인의 일에 집착하여 분수없이 남의 것만 넘보는 어리석은 인간의 추함을 반성하게 만듭니다. 말없이 땅속에 뿌리를 박고 저 혼자 열심히 자라나 푸름을 지키며 꽃과 열매를 맺어 인간에게 바치는 나무, 눈을 감고 깊이 생각에 젖어 있는 듯한 나무, 그 앞에 서면 향기로운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는 건 지나친 바람이나 생각이 아니겠지요.

 

 

언젠가 심은 나무 / 김후란

 

안개비 서린

이른 봄날

산길을 걷자

어느 추억으로도

마음 달랠 길 없을 때

손짓하는 자연의 손길

보송보송 다시 살아나

빛나는 몸으로 일어서는

산을 맞으러 가자

그곳에 파랗게 눈떠 가는

나무를 찾아서

언젠가 심은 그 나무 찾아서

 

나무를 심어 보셨는지요? 한 그루 어린 나무를 심어 놓고 눈, 비바람 속에서도 잘 자라주기를 기도하며 가끔 찾아가 어루만져 준 적이 있는지요? 언젠가는 주인이 찾아와 잘 자랐다고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며, 온갖 시련을 견디며 한 자리에서 열심히 자라는 나의 나무를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주인이 없는 나무라 할지라도 손길을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을 겁니다. 우리는 때때로 고통과 상처를 안고 자연을 찾아갑니다. ‘어느 추억으로도 / 마음 달랠 길 없을 때 / 손짓하는 자연의 손길’, 자연은 말없이 아픈 상처를 감싸안아 주며 잘 왔어! 푹 쉬어라고 속삭입니다. 그저 풋풋한 기운을 듬뿍 담아 포옥 안아 줍니다. 세상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가슴이 까맣게 타는 아픔으로 신음할 때에도 보송보송 다시 살아나 / 빛나는 몸으로 일어서는 / 산을 맞으러 가자라고 시인은 나직이 건네줍니다. 언젠가 심어 놓은 그 나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당신의 영원한 친구로 희망이 되어 그 자리에 서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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