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49) : 가을 노래 / 이해인

감.jpg



나의 애독시(449)

 

가을 노래 / 이해인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되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가을이 되면 물과 바람, 풀벌레와 감이 되고 싶다고 하지요. 저는 4연에 나오는 감이 되고 싶다는 바람에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 당신의 것으로 바쳐드리는 /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라는 구절에 유독 마음이 꽂힙니다. 하여, 어느 글에서 읽은 이런 구절을 옮깁니다. 잘 익은 감빛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손 안에 꽉 차는 감의 느낌, 힘을 더 주면 터질 것 같아 가만히 감의 무게를 쥐고 있노라면 부드러우면서도 팽팽한 감의 살, 말랑말랑하면서도 탱탱한 감의 살갗을 손 가득 느끼며 잘 익은 것의 감촉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홍빛이란 말 대신 감빛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일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제대로 익었을 때입니다. 익을 대로 익은 과일의 농익은 빛깔 중 하나가 홍시의 감빛입니다.이런 감을 당신께 바쳐드리겠다는 그의 마음은 감빛보다 더 짙은 색깔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움 덩어리인 농익은 그런 감을 누군가가 준다면 망설임 없이 받겠습니다. 어서 주기만 하십시오. 같은 제목으로 된 수녀님의 또 다른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시지요.

 

 

가을 노래 / 이해인

 

하늘은 높아 가고

마음은 깊어 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을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 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

죄없이 눈이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친구여,

너와 나의 사이에도

말보다는 소리 없이

강이 흐르네

이제는 우리

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

남은 시간 아껴 쓰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구나

 

잎이 질 때마다

한 웅큼의 시()들을 쏟아 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

 

하늘은 높아 가고

기도는 깊어 가네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2,743개의 글

글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
2743서건석05:269
2742서건석25.10.0415
2741서건석25.10.0321
2740서건석25.10.0215
2739서건석25.10.0117
2738서건석25.09.3019
2737서건석25.09.2930
2736편영범25.09.2849
2735서건석25.09.2819
2734서건석25.09.2731
2733서건석25.09.2617
2732서건석25.09.2536
2731서건석25.09.2443
2730서건석25.09.2322
2729모하비25.09.2234
2728서건석25.09.2223
2727서건석25.09.2121
2726서건석25.09.2019
2725서건석25.09.1923
2724서건석25.09.1870
2723서건석25.09.1822
2722서건석25.09.1737
2721서건석25.09.1718
2720서건석25.09.1619
2719서건석25.09.1617
2718모하비25.09.1526
2717서건석25.09.1522
2716서건석25.09.1517
2715서건석25.09.1413
2714서건석25.09.1415
2713서건석25.09.1316
2712서건석25.09.1315
2711서건석25.09.1212
2710서건석25.09.1222
2709서건석25.09.1115
2708서건석25.09.1123
2707서건석25.09.1019
2706서건석25.09.1019
2705서건석25.09.0921
2704서건석25.09.0920
2703모하비25.09.0830
2702서건석25.09.0837
2701서건석25.09.0826
2700서건석25.09.0715
2699서건석25.09.0721
2698서건석25.09.0612
2697서건석25.09.0617
2696서건석25.09.0514
2695서건석25.09.0518
2694서건석25.09.0415
2693서건석25.09.0420
2692서건석25.09.0316
2691서건석25.09.0321
2690서건석25.09.0214
2689서건석25.09.0217
2688모하비25.09.0128
2687서건석25.09.0122
2686서건석25.09.0117
2685서건석25.08.3114
2684서건석25.08.3123
2683편영범25.08.3054
2682서건석25.08.3017
2681서건석25.08.3035
2680서건석25.08.2916
2679서건석25.08.2924
2678서건석25.08.2814
2677서건석25.08.2822
2676서건석25.08.2713
2675서건석25.08.2719
2674서건석25.08.2612
2673서건석25.08.2618
2672모하비25.08.2539
2671서건석25.08.2518
2670서건석25.08.2521
2669서건석25.08.2421
2668서건석25.08.2419
2667서건석25.08.2318
2666서건석25.08.2323
2665서건석25.08.2220
2664서건석25.08.2221
2663서건석25.08.2119
2662서건석25.08.2123
2661서건석25.08.2018
2660서건석25.08.2025
2659서건석25.08.1921
2658서건석25.08.1938
2657모하비25.08.1830
2656서건석25.08.1824
2655서건석25.08.1819
2654서건석25.08.1717
2653서건석25.08.1717
2652서건석25.08.1615
2651서건석25.08.1622
2650서건석25.08.1519
2649서건석25.08.1528
2648서건석25.08.1415
2647서건석25.08.1425
2646서건석25.08.1317
2645서건석25.08.1324
2644서건석25.08.1218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