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329) : 봄날은 간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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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329)

 

 

봄날은 간다 / 이승훈

 

 

낯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당신과 함께 봄날은 간다 달이 뜬 새벽

네시 당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봄날은 간다 맥주를 마시며 봄날은 간다

서울은 머얼다 손님 없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달이 뜬 거리도 간다 술에

취한 봄날은 간다 안개도 가고 왕십리도 가고 노래방도 간다 서울은 머얼다

당신은 가깝다 내 목에 두른 마후라도 간다 기차는 가지 않는다 나도 가지

않는다 봄날은 가고 당신은 가지 않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해가 뜨면 같이 웃고 해가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은 간다 바람만 부는 봄날은 간다

글쟁이, 대학교수, 만성 떠돌이, 봄날은 간다 머리를 염색한 우울한 이론가,

봄날은 간다 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얼마 전에 타계한 왕년의 명가수 백설희씨가 부른 노래 <봄날은 간다>가 최근 한 시 전문지의 설문에서 시인들이 꼽은 최고의 노래에 뽑혔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노래가 시인들의 감성을 자극한 이유가 뭘까요? 우선 이 노래는 그 처연함과 나른함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마성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그리고 가는 봄이 주는 쓸쓸함이 감성이 풍부한 시인들을 흔들었나 보지요. ‘가는 봄은 멀어져가는 연인의 뒷모습이기도 하고, 나이 들어감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지는 꽃은 또 얼마나 허망한가요. 수십 년 전 어느 해 봄. 선창가 어느 선술집 연탄 화덕 앞에서 듣던 그 처연한 노래. 젓가락 한 손에 잡고 구성지게 노래 부르다가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던 주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몇 년 전 시인 100명에게 애창곡을 물었더니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계간(季刊) ‘시인세계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조사에서였습니다. 대중가요가 시인들의 애송시(愛誦詩)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천양희 시인은 "이 노래만 부르면 왜 목이 멜까"라고 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라는 첫 구절을 부를 땐 아무렇지도 않더니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이 대목을 부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슬픈 무엇이 느껴졌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을 단 시도 많습니다. '이렇게 다 주어버려라 / 꽃들 지고 있다 /()/ 지상에 더 많은 천벌이 있어야겠다 / 봄날은 간다.' 고은은 봄날의 허무 속에서 퇴폐와 탐미를 찾았습니다. 안도현은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 봄날은 가고 있었다고 탄식했습니다. 29세에 요절한 기형도는 '봄날이 가면 그뿐 / 숙취는 몇 장 지전(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라는 시를 남기고 생의 봄날에 떠났습니다. '봄날은 간다'를 패러디한 시도 있습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우는 /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봄날은 간다 /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정일근). '낯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이승훈). 원로 가수 백설희의 대표곡 '봄날은 간다'1953년 대구에서 유성기 음반으로 발표됐습니다.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는 밝은 봄노래의 정형(定型)을 벗어던졌습니다. 너무 환해서 더욱 슬픈 봄날의 역설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 맺힌 내면 풍경을 보여줬기에 이내 공감을 샀습니다. 백설희는 낭랑하면서도 체념한 목소리로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돼 슬픔에 젖은 여심(女心)을 표현했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이미자 배호 조용필 나훈아 장사익 한영애 등등이 제각각 음색으로 부른 불후의 명곡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도 줬습니다. 25() 가야금 연주가 정민아는 이 노래를 주제로 한 연주회를 열었어요. 같은 이름의 영화와 연극도 나왔습니다. 영화에선 남자가 변심한 여자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울먹였습니다. 백설희는 갔어도 노래 '봄날은 간다'를 향한 한국인의 사랑은 결코 변치 않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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