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 Symphony No. 6 ‘Pathetique’ Op. 74 (357)
- 서건석
- 2025.05.16 06:09
- 조회 18
- 추천 0
▣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357)
357
♣ Tchaikovsky / Symphony No. 6 ‘Pathetique’ Op. 74
♬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들으면 차디찬 겨울의 나라 러시아가 생각납니다. 이 곡에는 태양이 숨어버린 동토의 춥고 어두운 겨울, 광대한 시베리아 벌판 위에 부는 바람 같은 비장함이 서려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발표하고 며칠 뒤에 죽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통해 러시아 특유의 우수와 비애를 노래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장대한 스케일의 비가(悲歌)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겁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것일까요, 음악은 처음부터 음울함을 드러냅니다.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을 배경으로 바순이 느리게 중얼거리듯이 제1 주제를 연주합니다. 이 느린 주제는 곧 현악기 전체로 옮겨지고, 나중에는 템포를 빨리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됩니다.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했지만, 박자가 빨라지면서 악상도 격렬해집니다. 그러면서 불안감도 증폭됩니다. 그렇게 제1 주제가 지나가고 나면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템포가 확연히 느려지면서 현악기들이 그 유명한 제2 주제를 연주합니다. 현악기 전체가 연주하는 이 주제 선율은 그야말로 ‘장대한 비가’라는 말에 어울립니다. 음악을 들으면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 위에 부는 거대한 바람 같은 전율이 느껴집니다. 음악은 모든 악기가 격렬하게 폭발하는 발전부를 거쳐 다시 처음의 장대한 비가로 돌아옵니다. 차이콥스키가 자기 죽음을 예감하며 썼던 처연한 비가는 현악기의 피치카도에 맞추어 연주하는 관악기들의 쓸쓸한 소리와 함께 사라지듯 끝납니다.
아시다시피 교향곡 <비창>은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작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꼽힙니다. 차이코프스키 자신도 ‘나의 일생에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초연했을 때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지만, 9일 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다시 무대에 올렸을 때는 청중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는 러시아적인 우수와 비애, 끝없는 비탄과 격정, 인간에 대한 동정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끌어안은 듯한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린 곡입니다. 음악학자 덴트는 이 곡을 ‘고통받는 영혼의 고뇌를 어느 작곡가와도 비견할 수 없는 처절한 심도로 그려내고 있다.’라고 평했습니다. 이처럼 묵직한 슬픔을 전해줄 만한 곡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절한 느낌이 강렬합니다. 그래서 <비창>은 손으로 쓴 작품이 아니라, 눈물로, 그것도 피눈물로 쓴 그의 유서요, 자신이 써서 자신에게 바친 진혼곡(Requiem)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레퀴엠 교향곡’이라고까지 부릅니다. 역대 교향곡 중에서 비극의 정서를 담은 가장 크고 장대한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적인 아름다운 선율과 완벽한 형식의 균형, 무겁고 웅장한 관현악 연주는 세계 불멸의 교향곡으로 남기에 충분합니다.
여느 교향곡처럼 4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 악장의 형태나 빠르기 등은 기존 교향곡의 형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교향곡이라면 보통 2악장이 느리고 4악장이 빠르지만, 이 곡은 반대로 작곡되었습니다. 아다지오로 시작해서 아다지오로 끝나는 특이한 구성입니다. 러시아 민요를 가져다 놓은 것 같은 2악장이 빠르고 마지막 악장은 느립니다. 오히려 3악장이 마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듯 빠르고 힘차기 때문에 3악장이 끝나면 박수가 터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4악장은 무너질 듯 오열을 터뜨리다 주저앉아 흐느끼고 끝나고도 한참을 지나서 박수가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난 줄 몰라 박수를 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가슴이 텅 빈 듯 멍하고 휑한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그렇게들 하는 것입니다.
보통 1악장은 빠른 악장이지만 여기서는 무척 느린 아다지오로 시작합니다. 이것이 이 교향곡의 첫 느낌을 좌우하는 인상적인 시작입니다. 콘트라베이스가 피아니시모, 즉 매우 여리게 연주되면서 마치 먼 곳에서 흐느끼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웁니다. 그리고 이 울음은 바순(파곳)으로 이어지는데 절망적인 소리로 슬픔을 노래합니다. 제1 주제는 서주의 아다지오보다 리드미컬한 형태인데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 상태를 보여 줍니다. 그러다가 기막히게 아름다운 제2 주제가 나타납니다. 이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어딘지 애절하고 안타깝습니다. 주제들이 전개부로 들어가면서 점점 처참하고 절규에 가까워집니다. 주제는 놀랍게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돈 호세의 처절한 아리아 <꽃노래>와 너무 닮아있습니다. 아니, 바로 그것을 빌린 것입니다. 북국의 차이콥스키는 남국의 열정적인 오페라 <카르멘>을 너무나 사랑했고 한동안 그것에 빠져서 지냈습니다. 카르멘이라는 여성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남자 호세의 마음과 이미지는 모두 이 아리아 한 곡으로 대변됩니다. 늘 힘들었던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마지막 곡에 이 아리아를 넣은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제2악장은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로서 ‘우아하면서 빠르게’란 뜻입니다. 5박자의 러시아 민요로 율동적인 멜로디가 우아하게 흐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감이 느껴집니다. 무엇인가 비어 있는 즐거움, 두려움을 애써 잊으려는 짧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나, 주선율을 노래하는 활기찬 느낌 속에 왠지 모를 불안과 근심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제3악장은 빠른 춤곡 형식입니다. 타란텔라라는 이탈리아 민속춤인데, 이탈리아를 유독 좋아하고 여행하기도 했던 작곡가가 채집한 것입니다. 일견 경쾌하며 마지막에는 팀파니 강타와 심벌즈의 울림 속에서 격정적으로 끝나지만, 이 대목 역시 파국 이전에 잠깐 비치는 한바탕 춤일 뿐입니다. ‘피날레’라고 적혀 있는 제4악장 역시 일반적인 제4악장과는 달리 대단히 느립니다. ‘아다지오 라멘토소’라는 말 그대로 ‘매우 느리게 탄식’합니다. 주제가 현악기에서 시작해 전개되다가 하나둘 악기들이 가세하여 총주에 이르고 포르티시모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뒤에 다시 피아니시모로 사라지듯이 꺼져갑니다. 이렇게 몇 번의 밀물과 썰물이 강렬하게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고통과 고뇌는 점점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지막의 쓸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마치 죽은 이를 위로하는 진혼곡 같은 이 악장은 슬픔을 반복해 마치 다양한 슬픔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곡을 들으며 가장 불행한 것 뒤에서 가장 행복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4악장으로 구성된 곡 중 제1악장은 마치 짙은 암흑으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서 시작과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듯 콘트라베이스의 공허한 화음이 깔린 가운데 파곳(바순)이 신음합니다. 곧 반복되는 변주로 새로운 주제로 옮겨가며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고통 속으로 안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밑바닥까지 비탄을 끌어내려 마지막에 맛보는 체념과 포기의 위험을 공허함으로 경고하는 듯합니다.
제2악장에선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러시아 민요에서 흔히 나타나는 2박자와 3박자를 합친 불안정한 5박자를 사용해 악장 전체에 익살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제3악장에서 차이코프스키는 4분의 4박자 행진곡 주제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8분의 12박자 스케르초 주제를 사용해 또 다른 변화를 주면서 행진곡 악상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팀파니 강타와 심벌즈의 울림 속에서 절정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마지막 제4악장은 운명을 예감한 듯 탄식하는 슬픈 노래입니다. <비창>이라는 이름에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고 처참한 고통이 배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죽은 이를 위로하는 진혼곡 같은 이 악장은 슬픔을 반복해 마치 다양한 슬픔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4악장은 스러지듯 끝납니다. 연주할 때는 언제 끝났는지 알 수 없게 약하고 조용하게, 연주하면서도 확실한 음을 내어 연주해야 하므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끝난 뒤의 침묵 또한 중요한 음인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차이코프스키는 10월 1일 요릿집에서 마신 냉수로 인해 콜레라에 걸려 이 곡이 초연된 지 9일 만인 11월 6일 오전 3시, 53년의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강요에 의해 콜레라균에 감염된 냉수를 마시는 자살 의식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Daniele Gatti(cond)
L'Orchestre national de France
- 전체1건(33.57 KB) 모두 저장
2,467개의 글
글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2467 | 서건석 | 05:40 | 1 | |
2466 | 서건석 | 05:32 | 1 | |
2465 | 서건석 | 25.05.24 | 3 | |
2464 | 서건석 | 25.05.24 | 6 | |
2463 | 서건석 | 25.05.23 | 7 | |
2462 | 서건석 | 25.05.23 | 11 | |
2461 | 서건석 | 25.05.22 | 12 | |
2460 | 서건석 | 25.05.22 | 15 | |
2459 | 모하비 | 25.05.21 | 33 | |
2458 | 서건석 | 25.05.21 | 15 | |
2457 | 서건석 | 25.05.21 | 15 | |
2456 | 모하비 | 25.05.20 | 23 | |
2455 | 서건석 | 25.05.20 | 15 | |
2454 | 서건석 | 25.05.20 | 16 | |
2453 | 서건석 | 25.05.19 | 17 | |
2452 | 서건석 | 25.05.19 | 17 | |
2451 | 서건석 | 25.05.18 | 17 | |
2450 | 서건석 | 25.05.18 | 20 | |
2449 | 서건석 | 25.05.17 | 15 | |
2448 | 서건석 | 25.05.17 | 18 | |
2447 | 서건석 | 25.05.16 | 18 | |
2446 | 서건석 | 25.05.16 | 16 | |
2445 | 이경준 | 25.05.15 | 39 | |
2444 | 이경준 | 25.05.15 | 42 | |
2443 | 서건석 | 25.05.15 | 16 | |
2442 | 서건석 | 25.05.15 | 17 | |
2441 | 서건석 | 25.05.14 | 13 | |
2440 | 서건석 | 25.05.14 | 19 | |
2439 | 서건석 | 25.05.13 | 14 | |
2438 | 서건석 | 25.05.13 | 18 | |
2437 | 모하비 | 25.05.12 | 49 | |
2436 | 서건석 | 25.05.12 | 24 | |
2435 | 서건석 | 25.05.12 | 16 | |
2434 | 서건석 | 25.05.11 | 25 | |
2433 | 서건석 | 25.05.11 | 26 | |
2432 | 서건석 | 25.05.10 | 19 | |
2431 | 서건석 | 25.05.10 | 23 | |
2430 | 서건석 | 25.05.09 | 22 | |
2429 | 서건석 | 25.05.09 | 25 | |
2428 | 서건석 | 25.05.08 | 20 | |
2427 | 서건석 | 25.05.08 | 23 | |
2426 | 서건석 | 25.05.07 | 22 | |
2425 | 서건석 | 25.05.07 | 22 | |
2424 | 서건석 | 25.05.06 | 21 | |
2423 | 서건석 | 25.05.06 | 22 | |
2422 | 모하비 | 25.05.05 | 43 | |
2421 | 서건석 | 25.05.05 | 29 | |
2420 | 서건석 | 25.05.05 | 22 | |
2419 | 서건석 | 25.05.04 | 22 | |
2418 | 서건석 | 25.05.04 | 19 | |
2417 | 서건석 | 25.05.03 | 29 | |
2416 | 서건석 | 25.05.03 | 16 | |
2415 | 서건석 | 25.05.02 | 27 | |
2414 | 서건석 | 25.05.02 | 23 | |
2413 | 서건석 | 25.05.01 | 17 | |
2412 | 서건석 | 25.05.01 | 17 | |
2411 | 엄동일 | 25.04.30 | 42 | |
2410 | 서건석 | 25.04.30 | 25 | |
2409 | 서건석 | 25.04.30 | 29 | |
2408 | 서건석 | 25.04.29 | 29 | |
2407 | 서건석 | 25.04.29 | 19 | |
2406 | 모하비 | 25.04.28 | 52 | |
2405 | 서건석 | 25.04.28 | 20 | |
2404 | 서건석 | 25.04.28 | 17 | |
2403 | 서건석 | 25.04.27 | 24 | |
2402 | 서건석 | 25.04.27 | 23 | |
2401 | 편영범 | 25.04.26 | 40 | |
2400 | 편영범 | 25.04.26 | 36 | |
2399 | 서건석 | 25.04.26 | 21 | |
2398 | 서건석 | 25.04.26 | 22 | |
2397 | 서건석 | 25.04.25 | 27 | |
2396 | 서건석 | 25.04.25 | 34 | |
2395 | 서건석 | 25.04.24 | 29 | |
2394 | 서건석 | 25.04.24 | 20 | |
2393 | 서건석 | 25.04.23 | 29 | |
2392 | 서건석 | 25.04.23 | 29 | |
2391 | 서건석 | 25.04.22 | 32 | |
2390 | 서건석 | 25.04.22 | 25 | |
2389 | 모하비 | 25.04.21 | 47 | |
2388 | 서건석 | 25.04.21 | 20 | |
2387 | 서건석 | 25.04.21 | 31 | |
2386 | 서건석 | 25.04.20 | 31 | |
2385 | 서건석 | 25.04.20 | 26 | |
2384 | 서건석 | 25.04.19 | 20 | |
2383 | 서건석 | 25.04.19 | 26 | |
2382 | 서건석 | 25.04.18 | 27 | |
2381 | 서건석 | 25.04.18 | 28 | |
2380 | uhmk74 | 25.04.17 | 43 | |
2379 | 서건석 | 25.04.17 | 38 | |
2378 | 서건석 | 25.04.17 | 27 | |
2377 | 이경준 | 25.04.16 | 48 | |
2376 | 서건석 | 25.04.16 | 23 | |
2375 | 서건석 | 25.04.16 | 22 | |
2374 | 서건석 | 25.04.15 | 35 | |
2373 | 서건석 | 25.04.15 | 23 | |
2372 | 모하비 | 25.04.14 | 54 | |
2371 | 서건석 | 25.04.14 | 24 | |
2370 | 서건석 | 25.04.14 | 26 | |
2369 | 서건석 | 25.04.13 | 23 | |
2368 | 서건석 | 25.04.13 |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