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34)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눈길.jpg



나의 애독시(234)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이게 웬일입니까요? 3(2012)에 두 번씩이나 눈이 내리다니요. 꽃망울이 채 개화하기도 전에 밤새 내린 눈이 망울들을 감싸안았습니다.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막 움튼 나뭇가지의 새순도 소복한 눈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눈인데도 한겨울에 내린 눈과 봄을 시샘하며 춘삼월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마음은 전혀 다르죠. 이 시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스러움과 자연의 조화로운 정신을 보여 주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의 각 행들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하였다고 보면 됩니다. 이 시에 나오는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적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를 배경으로 새로 돋은 정맥’, ‘올리브빛’, ‘등의 이질적인 시어들은 모두 독자적인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순수하고 맑은 생명감이라는 공통적인 심상을 연상시켜 줍니다. 이 시는 주제를 담은 시라기보다 하나의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

 

이 시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시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해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한 무의미의 시를 실험한 작품입니다. 곧 김춘수의 무의미 시론에 기초한 작품으로 관념이나 의미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사물의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15행 단연으로 이루어진 점,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여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를 나타낸 점, 각 행들이 논리적인 의미 전달과는 무관하게 서술적 이미지만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 등을 표현상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샤갈의 마을, , 새로 돋은 정맥, 올리브빛, 불 등과 같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적절하게 조화하여 봄을 맞이하는, 순수하고 맑은 생명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 연상되는데, 마르크 샤갈의 화풍인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 세계와도 부합되는 면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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