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녹화 비화 28: 적송(소나무) 망국론
- 이경준
- 2025.02.0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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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녹화 비화 28: 적송(소나무) 망국론
이경준
2014년 실시한 한국갤럽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라고 한다. 요즘에는 소나무를 가로수, 공원수, 아파트 단지 조경수로 많이 심어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소나무는 한반도에서 가장 흔한 나무로서 우리 조상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함께해 왔다.
조선왕조는 소나무를 가장 쓸모 있는 나무로 판단하여 소나무의 벌채를 금하는 금송(禁松) 정책을 폈다. 즉, 궁궐, 관아, 군선, 사대부 집 건설에 필요한 소나무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봉쇄하는 봉산(封山) 정책으로 소나무를 특별히 보호했다. 대표적인 예가 충남 안면도의 소나무 숲이었는데, 곧게 자라고 바닷가에 있어 한양까지 운반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나무는 모든 목재 종류의 중심역할을 하여 주목(主木)으로 대접을 받았으며, 대신 ‘나무 중의 나무’라고 하는 참나무를 포함하여 나머지 나무들은 잡목(雜木)으로 취급되어 홀대를 받았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되었다.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인구가 늘면서 산림이 서서히 파괴되기 시작했다. 온돌이 널리 보급되면서 장작 사용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쓸모가 많던 활엽수 특히 느티나무 자원이 고갈되면서 소나무가 주요한 목재 자원으로 부각된 것이다. 박상진(朴相珍) 경북대 명예교수에 의하면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는 "느티나무 문화"였다고 한다. 목재 가치가 뛰어나고 그 당시 흔하게 발견되는 느티나무를 먼저 이용했는데, 실제로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조선 시대 이전의 유물 중에는 느티나무가 자주 발견되고 소나무가 거의 없으며, 또 당시 역사적 기록 속에 소나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일본은 2020년 유엔 통계에 의하면 국토 면적의 68.4%인 2,494만 ha가 산림으로서 남한 산림 면적의 약 4배에 해당하며,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임업국가다.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산림을 잘 보존하고 나무를 많이 심어 지금의 울창한 숲을 유지하면서 국민이 숲에 대해서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벽돌이나 콘크리트보다 지진에 강한 목조 주택을 선호하는 전통을 이어받아 목재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구미(組, 한국의 산림계에 해당) 라는 마을별 산림조합을 결성하여 규약을 만들었고, 이를 근거로 연료와 목재 채취 질서를 확립하여 숲을 공동으로 관리해 온 까닭이었다. 소나무(赤松, 적송, 붉은 껍질을 가진 소나무의 한자명)가 우리나라처럼 주요 자생 수종 중의 하나인데, 1960년대부터 소나무재선충의 피해를 받아 소나무 숲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20세기 초반 일본에 아직 석탄과 석유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 고베, 오사카, 나고야 등 관서지방(동경의 서쪽 지역)의 산림이 황폐한 적이 있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목재 수요가 증가하고 연료를 과다하게 채취함으로써 산림이 크게 훼손되었는데, 그 지역에 대신 소나무가 번성하고 있었다. 일본 동경대학의 임학자인 혼다 세이로쿠(本多 靜六) 교수는 이 지역을 여행한 후 1922년 동양학예잡지(東洋學藝雜誌)에 ‘일본 지력 쇠퇴와 소나무’라는 글을 발표했다.
우거진 숲에서 나무를 벌채하면 산림 환경이 급속히 변한다. 낙엽은 토양에 유기물층을 형성하여 산림토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벌채가 이뤄지면 늘어난 햇빛으로 토양 온도가 올라가고 곰팡이의 활동이 활발해져 낙엽이 급속히 분해되어 없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여름철 폭우로 인해 산에서 노출된 흙이 씻겨나가면서 양분을 저장하고 있는 겉흙(표토)이 소실되어 토양은 더욱 건조해지고 척박해진다. 이런 토양에서는 양분을 많이 요구하는 활엽수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대신 소나무는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황폐한 산림에서 햇빛이 충분하면 적응력이 다른 수종들보다 월등하게 높다. 특히 솔방울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만들어지며 충실 종자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바람에 의해 널리 퍼진다. 맨땅에 떨어진 솔 씨는 다른 활엽수(예를 들면 단풍나무 혹은 물푸레나무)와 다르게 거의 100% 싹이 터서 봄철 가뭄을 극복하면서 그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즉, 땅이 척박할수록 소나무가 더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혼다 교수는 황폐해진 관서지방에서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올라오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는 이 논문에서 “소나무는 그곳의 지력(地力)이 척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수목이다. 오늘날 국세가 부진한 국가는 산지가 황폐해지고 그곳에는 소나무밖에 생육하지 못하며, 따라서 소나무의 번성은 국세가 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소나무가 있는 자연을 더 파괴하면 곧 사막으로 변해갈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즉,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는 것은 토양이 황폐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토양이 황폐해지면 국력이 쇠약해진다고 기술했다. 이러한 현상을 일부 일본 지식인들이 적송망국론(赤松亡國論)이라는 이름을 붙여 퍼트리기 시작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현대 생태학에서 식생 천이(遷移)의 초기 과정에서 양수(陽樹, 그늘에서 살 수 없는 나무)인 소나무가 먼저 나타난다는 사실을 토양 악화 현상과 연관시킨 논문으로써 100년 전의 선구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의 산림은 조선 시대 후기,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의 혼돈기를 거치면서 극도로 황폐했었다. 1956년 전국 산림의 절반 이상(58%)이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었으니, 그때의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현재 산림을 연상하면 된다. 다행히 1960년대 이후 산림녹화에 힘쓰면서 많은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나무를 제대로 심지 못했는데, 소나무에는 유독 병해충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솔나방(소나무 송충이)과 솔잎혹파리가 전국의 소나무를 무차별로 공격하여 소나무를 심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무숲(곰솔 포함)이 2020년 기준으로 전국 산림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소나무는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인간이 훼손한 숲에서 소나무는 스스로 자손을 퍼뜨린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대관령 방향으로 가면서 고속도로 양쪽 경사면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곧게 쭉 뻗어 있는데, 나이가 대략 40년생 정도로 비슷한 나이를 가진 동령림(同齡林)이다. 이 숲은 인공조림이 아니라 소나무 종자가 저절로 떨어져 형성된 천연림이다. 정부가 나무 벌채를 엄금한 후 척박한 땅에서 스스로 번식한 결과이다. 1세기 전 일본 관서지방의 소나무 번성과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숲은 모두 우거져 금수강산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천연 소나무숲이 서서히 줄고 대신 활엽수(참나무 포함)가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산림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산림토양이 비옥해지면서 활엽수가 소나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가 줄어드는 현상은 애석한 일이지만, 토양이 점점 더 비옥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유럽과 미국에도 소나무류가 많이 번성하고 있지만, 국력이 약해지지 않아서 ‘적송 망국론’은 맞는 이론이 아니다. 한국은 이제 ‘탈적송 시대’를 맞아 앞으로 더욱 번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요즘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소나무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소나무는 추운 기후를 좋아한다. 한겨울이 추우면 땅이 얼어 있고 기온이 낮아, 증산작용을 적게 하여 겨울에 비가 오지 않더라도 소나무가 건조피해 없이 무난하게 월동할 수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겨울철이 따뜻해지면서 이상난동(異常暖冬)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륙성 기후로서 겨울철에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만일 이상난동이 겨울 가뭄과 함께 찾아오면 소나무가 겨우 내내 증산작용을 계속하다가 이른 봄에 말라 죽는 현상이 발생한다. 2009년 겨울은 역대 가장 따뜻하면서 비가 거의 오지 않았던 계절이었다. 그해 4월 경남 밀양, 사천, 거제에서 야산의 소나무들이 집단으로 고사했다. 산림청 통계에 의하면 2009년 5월 경남과 전남에서 총 300만 그루의 야생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식생 천이, 지구온난화 현상, 그리고 최근에 극성을 부리고 있는 소나무재선충으로 인해 한반도의 소나무가 서서히 감소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가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참나무류와 활용도가 높은 활엽수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면 숲의 환경, 특히 종의 다양성은 더욱 높아지고 숲의 안정성도 증가하기 때문에 소나무가 쇠퇴하는 것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진 1. 오랜 세월 동안 곧은 소나무를 먼저 이용하여 쓸모가 없이 퇴화한 구불구불한 소나무만 남아 있다.
사진 2. 보호되고 있는 운문사 소나무숲은 야생 소나무보다 더 곧게 자란다.
사진 3. 금강산의 소나무는 인간의 간섭이 적어 곧게 자란다. (2008. 10)
사진 4. 오지에서 인간의 간섭 없이 잘 보존된 강원도 정선 소나무 천연림 (2021. 5. 12)
사진 5. 훼손된 야산에 솔씨가 떨어져 저절로 생긴 강원도 영동고속도로변 소나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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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좋은 소나무를 먼저 이용하여 구불구불하게 자라서 쓸모가 없는 야생 소나무.JPG(675.63 KB)다운로드 횟수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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