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s(1833~1897) (234)
- 서건석
- 2025.01.13 05:56
- 조회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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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234)
234
♣ Brahms(1833~1897)
♬ 가을에 듣는 음악이 반드시 슬퍼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가을이 반드시 슬픈 계절이 아니듯이. 그러나 격정적이고 육욕적인 음악은 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을은 삶의 실현이 아니라 삶의 조망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을에, 걸어온 길과 가야 할 길을 먼 시야로 조망합니다. 이런 때는 한층 차분하고 명상적 분위기를 돋워주는 음악이 걸맞을 겁니다. 짙은 커피향 같은 브람스의 음악이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가을이 오면 많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요하네스 브람스를 떠올립니다. 브람스의 고독하고 쓸쓸했던 인생과 진중하고 우수에 찬 음악이, 낙엽이 뒹구는 가을의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여겨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가을부터 저는 완전히 브람스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을이 되면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를 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느 틈엔가 브람스가 저의 가을 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브람스 음악을 열심히 집중해서 듣는 동안 예전엔 미처 몰랐던 브람스의 매력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닙니다. 요즘 브람스와 연애하고 있다고요.
물론 나는 바흐와 모차르트를 브람스 이상으로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이와 존경의 대상이지 연모의 대상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나누기에는 두 천재가 지닌 무게가 너무 버겁습니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사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사나이는 자기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과묵함과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중함, 어려움을 묵묵히 참아 내는 인내심, 자기 욕심보다 상대방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정신적 성숙함을 갖춘 사람입니다. 나는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의 음악에서 이런 진짜 사나이의 덕목을 읽어내곤 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사실 귀에 착 달라붙는 쇼팽이나 차이콥스키의 감미롭고 우울한 멜로디를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나도 젊어서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낭만에 젖고,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우수에 젖는 것을 즐겼습니다. 감성의 끝을 살살 간질여 주거나 아니면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짓이겨 주는 이런 음악에 비해 브람스의 음악은 너무 진지하고 내성적이어서 듣기에 부담스러웠습니다. 얄팍한 내 귀가 아주 오랫동안 이 진짜 사나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브람스는 내밀하고 정신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브람스는 선배 작곡가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사랑했습니다.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홀로 남은 클라라의 곁을 지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유행가 <뜨거운 안녕>의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남자답게’ 지켜주었던 브람스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한 남자. 이런 남자를 만나는 것은 나를 비롯한 이 세상 모든 여자의 꿈이지요. 이런 이야기만으로도 브람스는 여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음악은 쇼팽이나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보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브람스가 내면에 베토벤 못지않은 열정, 쇼팽 못지않은 로망, 차이콥스키 못지않은 비애를 자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너무 진지하고 내면적이어서 쉽게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매우 지적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냥 감정에 휘말리는 일 없이, 모든 음에 음악적 필요성과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그저 효과만을 위해 무의미한 음을 남발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며, 감정의 표피를 건드리기 위해 달콤한 멜로디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제목 같은 것도 붙이지 않고 오로지 음악 그 자체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쇼팽,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베토벤을 거쳐 나의 남성 편력기는 브람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내가 스스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보니 자연스럽게 브람스의 진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음악이 있지만 각각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시기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시기는, 인생을 사계절로 치자면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은 나이 듦이 가져다준 안온함 너머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진회숙: 음악평론가)
♬ 항상 신중하고 깊은 사고를 하며, 안으로만 침잠하는 성격이었던 그가 남에게 웅변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전 생애를 통해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내밀한 정신세계를 아주 소중하게 다듬어 감으로써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평가받기를 원했습니다. 내성적인 브람스는 대규모 청중이 모인 위압적인 음악회를 싫어했습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비르투오소의 화려한 기교,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색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바그너와 리스트로 대표되는 당시 낭만주의의 극적이고 표제적인 작품을 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선 성격적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소규모로 담백하면서도 깊고 순수한 맛을 내는 실내악은 그의 이런 품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양식이었습니다. 내성적인 그에게 실내악은 자신의 온갖 비밀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속에는 그의 삶의 과정과 사랑의 편력, 그리고 남녀 간에 벌어졌던 묘한 사연들이 아주 세밀하게 스케치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브람스란 한 인간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실내악을 자세히 관찰해 보는 것은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현재 알려진 브람스의 실내악은 c단조 스케르초를 위시하여 피아노 3중주 4곡, 피아노 4중주 3곡, 피아노 5중주 1곡, 현악 4중주 3곡, 현악 5중주 2곡, 현악 6중주 2곡, 첼로 소나타 2곡, 바이올린 소나타 3곡, 클라리넷 소나타 2곡, 클라리넷 3중주 1곡, 호른 3중주 1곡으로 총 26곡입니다. 아마 브람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 중에는 실내악의 찬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걸작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브람스의 실내악을 구별할 때, 우리는 종종 피아노가 딸린 실내악과 피아노가 없는 실내악으로 크게 나누는 경향이 있습니다. 브람스의 실내악에서 차지하는 피아노란 악기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브람스는 위대한 교향곡, 관현악 작곡가였지만, 우선은 대단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피아노는 그가 가장 잘 다루는 악기였고, 가장 잘 아는 악기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피아노 작품에는 아주 뛰어난 걸작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실내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피아노가 들어가는 실내악에서는 단연 빛을 발해 그 누구의 실내악도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실내악 분야에서 베토벤과 비교될 때, 사실 브람스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의 위력에 완전히 눌려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은 피아노가 딸린 실내악에서만은 브람스의 우위를 점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브람스는 자신을 고전주의 형식으로, 때로는 바로크 형식으로 표현했던 낭만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형식들의 범위 내에서, 브람스의 음악은 무척 독창적입니다. 브람스는 오페라와 교향시 같은 유행을 따르는 낭만주의 음악 장르를 피했습니다. 브람스는 작품 속에 자신이 존경했던 여인들에 대한 언급을 숨겨놓기는 했지만, 표제 음악을 작곡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목소리를 무척 좋아했고, 그의 낭만주의 가곡들은 슈베르트와 슈만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의 가곡의 주요 주제는 사랑, 자연, (인생의 만년에 이르러서는) 죽음입니다. 또한 그는 음악에 많은 민요 선율들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아름다운 <‘자장가’ Op. 49, No. 4>입니다. 이 곡은 ‘브람스의 자장가’라고도 불리며, 뮤직 박스나 아이들 장난감에 종종 사용됩니다.
브람스의 4개의 교향곡은 걸작들입니다. 1번과 4번은 강렬하고 열정적이며, 2번과 3번은 서정적이고 잔잔합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 멘델스존,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19세기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곡은 기법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며, 강렬하고, 활기찹니다. 또한 동시에 고요하고 아름다운 부분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브람스가 작곡한 2개의 피아노 협주곡 역시 걸작입니다. 브람스는 관현악 작품에서, 베토벤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그다지 크게 하지 않았고, 바그너와 리스트의 거대하고 화려한 음향을 피했습니다. 브람스 양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두꺼운 오케스트라 텍스처입니다. 그는 수많은 보표들을 사용하여 소프라노와 베이스 사이를 음들로 ‘채우기’를 좋아했고, 3도나 6도로 선율을 중복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클라리넷, 비올라, 프렌치 호른 같은 중간 음역의 악기들을 선호했습니다.
이러한 따뜻한 음향은 브람스의 실내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브람스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실내악곡을 여러 곡 작곡했습니다. 그는 또한 뛰어난 현악 4중주도 작곡하였으며, 풍부한 텍스처는 2개의 현악 5중주와 2개의 현악 6중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브람스는 생의 말년에 작곡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이후, 훌륭한 클라리넷 연주자를 만났고, 이 만남을 계기로 클라리넷이 포함된 실내악 작품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작품에는 열정이 깃들여 있는데, 이 열정은 체념과 황혼의 평화와 결합된 것입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독주곡들은 대부분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것들입니다. 초기 작품들은 강렬하고 화려하지만, 후기 작품들은 보다 섬세하고 심오합니다.
브람스는 합창곡을 여러 곡 작곡했는데, 그중 〈독일 레퀴엠(German Requiem)〉이 가장 유명합니다. 소프라노와 바리톤 독창자들,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연주에 참여하며, 가사는 브람스가 직접 독일어 성경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 작품은 종교의식이 아닌, 콘서트 연주를 위해 작곡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실하고 심오하게 들립니다. 브람스는 조직화된 종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경건한 생활을 하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성경책을 매일 읽었습니다.
브람스는 과거의 형식들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보수주의 작곡가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 면에서 혁신가였습니다. 리듬은 당김음, 오프비트(offbeat), 악센트, 2박과 3박이 섞인 박자 등을 자주 사용하여 늘 복잡하고 흥미로웠고, 프레이즈는 종종 불규칙하였는데, 일반적인 4마디, 8마디 형식에서 확대되거나 축약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변주의 대가로, 친숙한 선율이 끊임없이 변화하도록 했습니다. 사실 브람스의 음악은 똑같이 반복되거나 재현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음악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유기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브람스는 그 자신이 복잡하고 매혹적인 인물이었는데, 그의 음악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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