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 Dichterliebe Op. 48 (229)
- 서건석
- 2025.01.08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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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229)
229
♣ Schumann / Dichterliebe Op. 48
♬ 매년 오월이 오면 항상 즐겨 듣는 음악이 있어요. ‘아름다운 오월에’로 시작하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으로 이 작품은 따스한 봄날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요. 젊은 날 괴로울 때나 슬플 때 외로운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던 곡으로 미지에 대한 설렘이 서려 있지요.
예술의 역사를 보면 평범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을 강하게 지향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낭만주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예술은 현실 세계를 초월한 동화같이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고, 낯설고 경이로운 정서가 넘쳐납니다. 낭만주의를 말하는 로맨티시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중세 기사문학 로망스에서 유래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한 것은 괴테와 실러로 대표되는 19세기 독일 문학입니다.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영감은 대부분 이러한 문학 작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낭만주의 음악가 가운데 문학에 대한 애정이 유독 각별했던 사람이 로베르트 슈만입니다. 슈만이 어려서부터 문학 소년이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큽니다. 슈만의 아버지는 서점을 운영하며 살았지만 가게는 뒷전이고 서재에 파묻혀서 소설을 쓰는 일에 몰두할 정도로 문학광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했던 슈만은 괴이한 공상이나 무시무시한 기담(奇談)을 펼쳤던 루트비히 티크, 장 파울, 호프만 같은 낭만주의 작가들을 좋아했으며, 괴테의 <파우스트>는 아예 외우고 다니며 시를 낭송하는 바람에 친구들은 그를 파우스트나 메피스토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음악가가 된 후에도 슈만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시들지 않았습니다. 250편에 달하는 그의 가곡들이 그 방증입니다. 그 가운데 최고 걸작은 슈만이 가장 좋아했던 시인인 하이네의 시들로 만든 <시인의 사랑>일 겁니다. 하이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시들 안에는 사랑으로 인한 설렘, 갈망, 번뇌, 아픔, 체념의 감정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은 슈만의 손을 통해 더 미묘하고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피아노는 감미로운 멜로디로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순간순간 주저하고, 사랑에 들뜬 노래 곡조 밑으로 불안이 살며시 배어납니다. 사랑의 감정에 푹 빠진 한 남자를 이보다 더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슈만이 묘사하는 실연의 감정은 더욱 리얼합니다. 피아노의 복잡한 음형은 원망과 분노로 불타고 있는데 가사는 가슴이 터진다 해도 결코 그대를 원망하지 않겠다고 외칩니다. ‘꿈속에서 보니 자기를 버린 사람도 아파하더라.’라고 말하며 동병상린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남자는 자기가 사랑한 여자의 결혼식에서 들리는 요란한 음악 소리에 숨어 흐느끼기도 하고, 너무도 슬프고 외로워 꽃과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꽃이 말을 거는 이 비현실적인 순간에 절묘하게 울리는 불협화음은 청중을 환상의 세계로 이끕니다.
슈만은 작곡에 대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긴 부모의 권유로 1828년 라이프치히 대학 법과대학에 입학했지만 라이프치히로 온 후에도 법 공부보다는 피아노 선생을 찾아가 하루 종일 연습에만 매달렸습니다. 그 선생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클라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홉 살밖에 안 됐지만 이미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슈만은 14세의 클라라와 더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서 펼쳐지게 되지요.
1833년 어느 날 슈만에게는 엄청난 변화를 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는 손가락 힘을 강하게 해주기 위하여 자신이 고안한 연습 기계를 실험해 보다가 손가락을 다치게 되어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고 작곡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 이듬해에는 ‘새 음악’이라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펴내면서 당시 이름이 낯선 청년 음악가 브람스를 ‘베토벤의 위대한 독일 음악 전통을 이을 대가’라고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잡지의 영향력은 점점 커 갔으며 이 시기 그는 클라라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운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클라라의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반대했는데 그가 보기에 슈만은 가르쳐주고 먹여주었더니 철모르는 딸을 꾀는 배은망덕한 놈으로 생각했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길고 지루한 싸움이 이어지다 법정으로까지 비화되어 결국 법정에서 겨우 결혼 승낙을 얻었고 둘의 결혼생활은 그지없이 행복했습니다.
바로 그해에 클라라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들이 홍수처럼 넘쳐났는데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라는 그의 대표적인 연가곡집 등 한평생 작곡한 2백 50여 곡 중 절반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해 1841년을 ‘가곡의 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슈만의 가장한 유명한 연가곡집인 〈시인의 사랑〉은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 중 〈서정적 간주곡〉 편에 실린 65개의 시 중에서 16개의 시를 발췌하여 곡을 붙인 것입니다. 〈서정적 간주곡〉 편에 실린 시들은 하이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경험한 고뇌와 비탄을 보여줍니다. 〈시인의 사랑〉은 1840년에 작곡된 것으로, 당시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클라라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장인으로 인해 힘겨워하던 슈만은 하이네의 시들 중에서도 특히 공감이 가는 시들을 선택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처음에는 20개의 시를 선택하여 곡을 붙였으나 최종적으로 출판할 때는 16개의 곡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시인의 사랑〉은 연가곡이기는 하지만, 슈베르트의 연가곡과는 달리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이나 이야기가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은 가사의 내용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기보다는 조성구조나 선율진행을 통해서 16개의 노래가 일관성을 가지는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다시 말해, 슈만은 스스로 시인이 되어 음악적 문학 작품을 보여준 것입니다.
〈시인의 사랑〉은 슈만의 다른 연가곡과 마찬가지로 피아노의 역할이 반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악 선율과 상호작용하면서 비로소 완결된 음악적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슈만은 성악 선율이 완결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피아노가 선율을 완성하는 기법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성악과 피아노가 서로 상반된 의미를 만들어 내면서, 시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숨겨진 의미를 암시함으로써 낭만적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인의 사랑〉은 성악과 피아노가 서로 충돌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스승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딸인 클라라와 약 5년간의 열애 끝에 1840년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이해에 슈만은 자그마치 약 140곡의 가곡을 일사천리로 작곡해 냅니다. 정말 엄청난 생산력이었지요. 한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 폭풍 같은 에너지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완전한 무기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열에 들떠서 열정적으로 곡을 써내려 가는 슈만의 반대편에는 완전히 탈진한 모습으로 멍 때리고 있던 슈만도 공존했다는 것이지요. 슈만은 그렇게 극단적인 열정과 우울 사이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슈만의 이중성, 이름하여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이었습니다. 1840년에 작곡된 슈만의 가곡들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걸작들입니다. <리더크라이스> <여인의 사랑과 생애> <미르테의 꽃>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은 슈만의 여러 가곡집 중에서도 단연 걸작으로 꼽히는 명편입니다. 모두 16곡으로 이뤄져 있지요. 클라라와 결혼식을 올린 것이 9월 12일이었는데, 이 가곡집은 그보다 약 4개월 전에 작곡됐습니다. 9일 만에 일사천리로 쓰였다고 하는데, 슈만은 이번에도 역시 열에 들뜬 모습으로 클라라에게 이런 글을 남기지요. “나는 너무 기뻐서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선율과 반주는 나를 미치게 합니다. 하지만 클라라! 노래를 만든다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모두 16개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고, 개개의 곡은 내용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제1곡부터 제6곡까지 사랑의 기쁨, 제7곡부터 제14곡까지는 실연의 아픔, 마지막 제15, 16곡에서는 지나간 청춘의 향수와 실패한 사랑에 대한 쓰라린 심정을 노래합니다. 이와 같이 전체적 내용의 연결을 위해서 슈만은 거의 모든 곡에서 못 갖춘마디를 사용했고, 마지막 마디에서 박자의 수를 정확히 맞추지 않은 곡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 같은 시도는 비록 음악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시의 내용이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슈만의 고의적인 의도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못 갖춘마디로 시작되는 음들은 대부분 독일어에서 액센트를 가지지 않는 관사나, 부정관사 또는 전치사 그리고 일인칭 주어에 놓여 있습니다. 피아노 반주는 성악 선율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완결된 음악적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성악 선율이 완결된 형태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피아노가 그것을 완성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때로는 성악과 피아노가 서로 충돌하면서 서로가 상반된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같이 피아노와 노래가 대화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시인의 사랑>은 16곡으로 젊은이의 실연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데, 첫 곡 아름다운 오월에, 제2곡 나의 눈물 자국에서, 제3곡 장미, 백합, 비둘기, 제4곡 그대 눈동자를 볼 때, 제5곡 영혼을 가라앉히리, 제6곡 신성한 라인강의 흐름에, 제7곡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 제8곡 저 작은 꽃이 안다면, 제9곡 울리는 것은 플루트와 바이올린, 제10곡 연인이 부른 노래를 들으면, 제11곡 젊은이는 처녀를 사랑해, 제12곡 밝은 여름 아침에, 제13곡 나는 꿈속에서 울었네, 제14곡 밤마다 꿈에, 제15곡 옛 이야기에서, 마지막 16곡인 불쾌한 옛 노래 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Jonas Kaufmann(tenor), Helmut Deutsc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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