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zt / Symphonic Poem No. 3 ‘Les préludes’ Op. 97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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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208)

 

 

208

 

Liszt / Symphonic Poem No. 3 ‘Les préludes’ Op. 97


 

젊은 시절 프란츠 리스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로 명성을 날렸지요. 그는 당대의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화려한 테크닉과 현란한 쇼맨십을 과시하며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최고의 비르투오소로 각광받았고, 나아가 근대 피아노 연주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한 독창적이고 위대한 연주가로 존경받았습니다. 하지만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순회연주가로서의 요란한 인기와 부()를 뒤로 하고 보다 진중한 행보로 인생의 새 장을 열어나갔던 것입니다. 1840년대 후반 무렵부터였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유력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지요. 리스트는 러시아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그녀를 만나 이후 15년간 연인이자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녀는 화려하고 섹시한 여성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외모상으로 보자면 그 몇 해 전에 결별했던 마리 다구가 훨씬 더 남성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타입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데 당대 사교계에서 완전 센 여성으로 통했던 마리 다구마저도 리스트의 여성 편력 때문에 상당히 속을 끓였다고 전해집니다.

 

리스트의 변신은 한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472, 리스트는 러시아의 키예프에서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남편과 별거 중이었던 그녀는 리스트를 추앙하는 다른 무수한 여인들과는 뭔가 달랐는데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깊은 종교적 감성을 지녔고, 문학에 대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러시아 남부에 있는 자신의 성으로 리스트를 데려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순회 연주 활동은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하라고 그를 설득하지요. 연인의 의미심장한 충고를 받아들인 리스트는 9월의 엘리자베트그라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접고, 이듬해 독일의 소도시 바이마르로 가서 궁정악장직을 수행합니다.

 

사실 리스트는 그러니까 1842년에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감독직을 수락하는 잠정적 계약서에 서명을 한 적이 있었지요. 유럽 곳곳을 바람처럼 떠돌며 살던 그가 바이마르에 정착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입니다. 그런 리스트에게 카롤리네가 했던 충고는 이제 피아노 연주를 줄이고 작곡에 전념하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카롤리네는 매우 지적이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사람이 만난 이듬해에 리스트는 바이마르 알텐부르크에 집을 마련하지요. 1848년이었습니다. 카롤리네는 남편인 비트겐슈타인 공작과 법적으로 이혼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바이마르로 와서 리스트를 내조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법적인 남편과 끈질긴 이혼 투쟁을 벌이지요. 하지만 비트겐슈타인 공작이 세상을 떠난 1864년에야 이혼이 성사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리스트와 그녀가 이후에 법적인 부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속사정이야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 무렵 두 사람의 관계는 거의 친구에 가까웠다고 전해집니다. 급기야 리스트는 1865년에 신부(神父)가 되지요.

 

어쨌든 바이마르에 집을 마련한 1948년에 리스트는 궁정의 음악감독직에 마침내 취임합니다. 삶에서의 큰 변화였을 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획기적 전환을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유럽을 곳곳을 돌며 환호를 이끌어냈던 투어 피아니스트로서의 시기는 막을 내립니다. 이때부터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관현악곡 작곡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특히 교향시(symphonic poem)야말로 이 시기의 리스트를 대표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향시(symphonic Poem)란 관현악에 의한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말 그대로 교향곡(symphony)’(poem)’라는 두 개념이 만나 낭만주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장르입니다. 간략히 말해서 시적인내용을 교향곡적인형식 속에 담아낸 음악인데, 다만 교향곡과는 달리 단악장 구성을 취한 형태가 일반적이고,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연주회용 서곡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이 장르를 창시한 장본인이 바로 바이마르 시절의 리스트였습니다. 그는 <타소>, <오르페우스>, <마제파> 등 모두 13편의 교향시를 남겼는데, 그중 3<전주곡(Les Préludes)>이 그중 가장 유명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삶에 관한 비장미가 전편에 넘쳐흐르는 관현악곡의 걸작입니다. ‘순례의 해와 더불어 그의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로 꼽힙니다.

 

리스트의 전주곡은 오페라나 발레의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하는 전주곡이 아닙니다. <전주곡>은 이른바 철학적 교향시로 분류되는 작품으로서 그 주제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상징적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의 시인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 시적 명상록>에 수록된 송시(Ode)'에서 유래했는데, 18564월에 출판된 악보에는 작품의 대의를 설명한 서문이 붙어 있습니다. 라마르틴의 송시에 기초하여 공작부인 카롤리네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서문의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죽음에 의해 그 엄숙한 첫 음이 연주되는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모든 존재의 눈부신 여명이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이 아름다운 환영을 흩어버리고 격렬한 전광이 제단을 파괴해 버리는 폭풍우에 의해서 그 최초의 행복의 환희가 중단되지 않을 운명이 어디 있겠는가? 처참하게 상처 입은 영혼은 그 격랑이 지나간 뒤 전원생활의 고요한 평온 속에서 아픈 기억을 달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품이 베푸는 자비 깊은 평안의 향락 속에 오래도록 안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팔 소리가 경보를 울리면, 그는 다시금 위험한 전장으로 돌진한다, 전투를 통해서 완전한 자각과 활력을 되찾기 위하여.”

 

다소 의고(擬古)적인 문투와 장황한 문체가 좀 껄끄럽긴 하지만, 이 서문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지침이 됩니다.

 

현악군의 엄숙한 피치카토로 시작되는 안단테의 도입부는 인생이란 죽음(과 이후의 세상)에 대한 전주곡이라는 대전제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여기서 서서히 상승하며 차츰 활력과 열기를 더해 가는 선율의 흐름은 마치 죽음의 차원에서 삶의 차원으로 이행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안단테 마에스토소의 주부로 진입하면 트롬본과 파곳, 저현부가 앞에서 나온 선율의 변형인 주제를 힘차게 연주합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주인공인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음악은 인생의 다양한 국면을 대표하는 네 개의 에피소드를 차례로 거쳐 갑니다. 그 첫 번째는 사랑의 에피소드이지요. 첼로와 호른이 주도하는 아름다운 칸타빌레 선율이 꿈결 같은 행복의 나날을 그려 보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템포가 알레그로로 바뀌어 인생의 시련을 상징하는 폭풍우가 휘몰아칩니다. 이 격렬한 소용돌이가 차츰 가라앉으면, 이번에는 전원에서의 휴식을 나타내는 알레그레토 파스토랄레의 세 번째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잉글리시 호른이 이끌어낸 목가적인 정취 속에서 호른에서 흘러나온 정겨운 선율이 목관악기들을 옮겨 다닙니다. 그러는 동안 템포가 조금씩 빨라지고 분위기도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며 휴식은 흥겨운 축제로 발전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격렬한 전장과 영웅의 모습이 음악을 절정으로 이끕니다.

 

그 정점에서 시작되는 네 번째 에피소드는 알레그로 마르치알레 아니마토의 용감한 행진곡으로 진행됩니다. 휴식을 통해서 원기와 의지를 회복한 영웅이 다시금 전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소리 높여 울려 퍼지는 트럼펫의 팡파르가 전쟁 같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리고, 자신의 존재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영웅의 모습이 당당히 부각되면서 음악은 장려한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갑니다.

 

이렇게 보면 <전주곡>이라는 교향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정한 의의는 사랑, 시련, 휴식, 투쟁이라는 일련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인생관을 응축해서 보여준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사에 새겨진 리스트의 족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피아노 비르투오조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향시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이지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서처럼 음악과 문학의 융합은 낭만주의 시대의 두드러진 경향입니다. 리스트의 교향시는 바로 그런 경향을 이끌었던 음악입니다. 교향시란 관현악 곡으로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시’(音詩, tone poem)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교향곡처럼 여러 악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한 개의 단일악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교향곡에 비해 표현 방식이 좀 더 자유롭다는 특징을 갖지요. 리스트 이후의 작곡가들 중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교향시에서 가장 많은 걸작을 남긴 대표적인 작곡가로 손꼽힙니다.

 





Vittorio Bresciani(cond)

Mitteleuropa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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